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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줄거리
송도 부호의 아들 홍생이 유람을 겸한 장사를 하기 위해 평양으로 가서 친구들과 같이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 휘흥을 이기지 못하여 홀로 작은 배를 타고 부벽정 아래에 이르러, 정자 위에 올라가서 난간을 의지하고 고국의 흥망을 탄식하며 시를 지어 낭랑히 읊고 삼경(三更)이 되어 돌아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발자국소리가 들려온다..
홍생은 영명사의 중이 찾아오는가 생각했으나, 뜻밖에도 한 미인이 좌우에서 시녀를 거느리고 비단부채를 들고 나타나는데, 그 위의(威儀)가 엄숙하고 정숙하여 마치 귀족 집안의 처녀 같다고나 하거니와, 홍생이 시녀의 내영(來迎)을 받아 누상으로 올라가서 그 미인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 미인의 신분은 은왕의 후예요, 기자왕의 딸로서, 부왕이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긴 후로 정절을 지켜 죽기를 기다리는데, 신선이 된 선조가 나타나 불사약을 주어 그 약을 먹고 수정궁의 상아가 되었다는 것이다.
홍생이 부벽루에서 그 선녀와 하룻밤을 지내며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부르다가 날이 새자 그 선녀는 승천하고, 홍생은 집에 돌아와 그 선녀를 생각하며 사모하던 끝에 병에 걸렸는데, 그 선녀의 시녀가 나타나, "우리 아가끼가 상제께 아뢰어 견우성 막하의 종사를 삼았으니 올라오라."고 일러 주는 꿈을 꾸고 난 뒤,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분향하고 누웠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빈장(嬪葬)한 지 몇 달이 지나도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핵심정리
▶ 작가 : 김시습
▶ 연대 : 세조 때
▶ 형식 : 한문소설, 단편소설
▶ 문체 : 역어체
▶ 주제 : 수천 년 전의 여인과의 사랑
▶ 의의 :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로 조선 시대의 소설, 특히 한문 소설의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 해제 : 죽은 여자의 혼령이 산 사람처럼 나타난 주인공과 함께 어울렸다는 점에서는 명혼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만남이 꿈속의 일인 것 같다는 설정은 몽유 소설과 상통하지만, 꿈의 시작과 끝을 불분명하게 해서 한층 더 미묘한 분위기를 조정했다. 도가적인 취향과 관련된 주체적인 사관을 내면적인 신념으로 승화시켰다.
▶ 출전 : 금오신화(金鰲新話)
이해와 감상(1)
: 평양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홍생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홍생이 평양으로 가서 친구들과 같이 대동강에서 놀다가 술이 취한 후 부벽정(루)에 올랐다가 기자(箕子)의 딸을 만나 밤이 새도록 시를 주고받으며 즐거움을 나누었다. 그런데 날이 새자 그 딸은 시를 남겨두고 홀연히 하늘로 올라가 버렸고, 시(詩)마저 회오리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그 이후 홍생은 상사병을 얻어 죽게 된다. 그의 시체는 며칠이 지나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는데, 이는 기자왕의 딸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으로 기자왕의 딸을 등장시킨 것은 김시습이 당시 기자왕에 대한 한시를 많이 지은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그리고 기자왕이 위만에서 나라를 빼앗긴 것은 단종(端宗)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것과 유사하다. 즉 기자왕의 딸을 사모한 것은 단종에 대한 연모의 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해와 감상(2)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93)의 한문 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린 5편 중 한 단편. 평양(平壤)의 부벽루(浮碧樓)에서 선녀와 더불어 논 이야기로서, 생육신의 한 사람인 작자는 이 작품 속에서 기자(箕子)를 들어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의 처사를 은연중 비난하였고, 죽은 여자의 혼령이 산 사람처럼 나타나 주인공과 어울렸다는 점에서 명혼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만남이 꿈속의 일인 것 같다는 설정은 몽유소설과 상통하지만, 꿈의 시작과 끝을 불분명하게 해서 한층 더 미묘한 분위기를 조정했다. 도가적인 취향과 주체적인 사관을 내면적인 신념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볼 수 있고, 시해 설화와도 관련이 있다.
이해와 감상(3)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린 5편 중 한 단편으로 같은 금오신화 내의 작품인 '만복사저포기'가 불교적이요, '이생규장전'이 유교적이라면, 이 작품은 도교적으로, 도교의 중심 사상은 신선사상인데, 이와 같은 신선담을 표현한 것은 작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선 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평양(平壤)의 부벽루(浮碧樓)에서 선녀와 더불어 논 이야기로서, 생육신의 한 사람인 작자는 이 작품 속에서 기자(箕子)를 들어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의 처사를 은연중 비난하였고, 죽은 여자의 혼령이 산 사람처럼 나타나 주인공과 어울렸다는 점에서 명혼(冥婚)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만남이 꿈속의 일인 것 같다는 설정은 몽유소설과 상통하지만, 꿈의 시작과 끝을 불분명하게 해서 한층 더 미묘한 분위기를 조정했다. 도가적인 취향과 주체적인 사관을 내면적인 신념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볼 수 있고, 시애 설화와도 관련이 있다.
이해와 감상(4)
조선 초기에 김시습 ( 金時習 )이 지은 한문소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일본 동경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작자의 단편소설집 ≪ 금오신화 金鰲新話 ≫ 에 실려 있다.
〈 취유부벽정기 〉 는 기자조선의 도읍지로 알려진 평양을 배경으로 하여 한 남자 상인과 죽어서 선녀가 된 기자(箕子)의 딸 사이에 이루어진 정신적인 사랑과 고국의 흥망에 대한 회고의 정을 진하게 담은 일종의 애정소설이다. 구조유형상 명혼소설(冥婚小說) 또는 시애소설(屍愛小說) 이라고도 부른다.
〈 취유부벽정기 〉 는 개성의 상인 홍생(洪生)이 달밤에 술에 취하여 대동강 부벽루에 올라가 고국의 흥망을 탄식하는 시를 지어 읊었다. 한 아름다운 처녀가 나타나 홍생의 글재주를 칭찬하면서 음식을 대접하였다. 홍생이 처녀와 시로써 화답하며 즐기다가 신분을 물었다. 처녀는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기자의 딸로서 천상계에 올라가 선녀가 되었다. 그런데 달이 밝자 고국 생각이 나서 내려왔다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기씨녀는 홍생의 청을 받고 긴 시 한수를 더 읊었다. 그 내용은 자기들의 사랑의 아름다움과 고국의 흥망성쇠에 관한 것이었다. 그 뒤에 기씨녀는 천명을 어길 수 없다며 사라지고 홍생은 귀가하여 기씨녀를 그리워하다가 병이 들었다. 어느날 홍생은 기씨녀의 주선으로 하늘에 올라가게 된다는 내용의 꿈을 꾸고 세상을 떠났다.
〈 취유부벽정기 〉 는 평양을 배경으로 하고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토속적인 성격 및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남녀간의 사랑을 제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작자의 작품인 〈 만복사저포기 萬福寺樗蒲記 〉 및 〈 이생규장전 李生窺墻傳 〉 과 동일하다. 정신적인 사랑을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그들과 구별된다.
〈 취유부벽정기 〉 는 불의와 폭력에 의하여 정당한 삶과 역사가 좌절되는 아픔을 표현한 작품이어서 짙은 우수가 서려 있다. 귀가한 주인공이 기씨녀를 그리워하다가 죽는 것으로 되어 있어 작품이 비극적 성격을 지니나 죽어서 신선이 되었다고 함으로써 그러한 성격이 다소는 약화되어 있다.
〈 취유부벽정기 〉 의 해석과 평가에는 여러 가지 견해가 엇갈려 있다. 작품에 나타난 사건을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역사적 사건의 우의(寓意)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선녀와의 연애 및 선계로의 승화를 현실도피로 보고 그것은 작자의 현실주의적 사상과 모순되는 것이기에 작품은 결국 작자의 정신적 갈등을 반영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모순에 찬 세계를 개조해서 세계와 화합하려는 자아와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세계의 대결을 통하여 소설적 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견해도 있다.
〈 취유부벽정기 〉 를 도가적(道家的) 문화의식의 투영으로 해석하여 작품에 나타난 갈등을 동이족(東夷族)의 문화적 우월감과 함께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극렬한 반존화적(反尊華的) 민족저항의 분한(憤恨)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금오신화의 의의
각 편들은 현실적인 것과 거리가 먼 신비로운 내용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전기소설(傳奇小說)인 〈전등신화 剪燈新話〉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첫째, 최녀로 대표되는 굳건한 기상이나 의지를 지닌 한국적 인물들을 창조했다는 점,
둘째, 공간적 배경을 조선으로 함으로써 주체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점,
셋째, 주인공들의 비극적 결말을 통해 작가의 기구한 처지를 투영하고 있다는 점,
넷째, 애민적(愛民的) 왕도정치사상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 등은 작가의 창작의도를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유가적 선비의 입장을 견지하던 주인공들이 불교적 인연관이 투영된 만남을 통해서 결국엔 죽음이나 부지소종(不知所終:어디에서 일생을 마쳤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의 도가적 모습으로 귀결되고 있는 공통점은 유․불․도 3교를 두루 통하고 화합을 지향했던 작가의 철학체계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 소설의 발달과정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수이전 殊異傳〉의 〈최치원 이야기〉, 〈보한집 補閑集〉의 〈이인보(李寅甫) 이야기〉 같은 명혼설화(冥婚說話)와 〈삼국유사〉의 〈조신(調信) 이야기〉 같은 몽유설화를 계승하여 소설이라는 문학양식을 확립시켰고, 그 이후 소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국외로는 일본의 전기문학인 도기보코[伽婢子]의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