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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사 저포기
줄거리
남원부에 살고 있던 한 노총각 양생이라는 사람이 일찍 부모를 잃고 결혼도 못한 채 만복사 동쪽에 홀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달밤 그는 문밖의 배나무 아래를 거닐며 외로운 자신의 심정을 시로써 읊고 있었다. 그 때 공중에서그대가 진정 배필을 얻고자 한다면 무엇이 어려우랴.하는 말이 들려왔다. 다음날 그는 소매 속에 저포를 간직한 채 불전에 나아가 축원하되 오늘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하여 만일 내가 지면 법연을 베풀어 치성을 드리옵기로 하고, 부처님이 지시면 나에게 아름다운 배필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였다. 축원이 끝난 뒤 그는 혼자서 저폭을 던졌다. 그가 이겼다. 그는 다시 불전에 꿇어 앉아일이 이미 이렇게 결정되었으니 저를 속이지 마옵소서 하고 궤 아래에 숨어서 동정을 엿보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15~6세의 아릿다운 처녀가 불전으로 오더니 부처님께 자신의 불행을 하소연하고 축원문을 불탁 위에 놓고는 흐느껴 울었다. 그 처녀의 축원문의 내용은 왜구의 침입으로 부모 친척과 노복을 잃고 벽지에서 고독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과 배필을 하나 얻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양생은 춘정을 이기지 못하여 곧바로 뛰어나가 그녀를 대하였다. 그녀도 흔쾌히 그를 맞이해 주었다. 이렇게 하여 부부의 정을 맺은 양생의 사랑과 부모간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아가는 것이 만복사저포기의 내용이다.
핵심 정리
▶ 갈래 : 고전 소설, 한문 소설, 전기(傳奇) 소설, 염정(艶情) 소설
▶ 시점 : 전지적 작가시점
▶ 문체 : 문어체, 산문체, (부분적으로) 운문체
▶ 배경
① 시간 - 고려 말(1380년) 최무선 장군의 화공(火攻)에 패배한 왜구들이 호남에 흩어져 노략질을 일삼을 때
② 공간 - 전라도 남원 만복사
▶ 구성 : 발단(부처님과의 저포놀이)-전개(여인과의 인연)-위기(여인의 정체)-절정(여인과의 사랑 및 여인의 사라짐)-결말(양생의 은둔)
▶ 주제 : 죽은 여인과의 몽환적(夢幻的) 사랑, 시공(時空)을 초월한 남녀 간의 사랑
▶ 출전 : 국립 중앙도서관 소장 동경판 《금오신화》
▶ 의의 : 최초의 한문소설, 조선 시대 소설 발달에 큰 영향을 줌, 몽유록계 소설의 효시, 전기 소설의 백미
▶ 인물 :
① 양생 - 뜨거운 정열을 가지고 진정한 사랑을 하고자 하는 인물. 생사를 초월한 사랑도 마다하지 않음.
② 죽은 여인 - 사랑을 막는 어떠한 장애물도 극복하여 진정한 사랑의 승리를 이룩하고자 하는 정열적 여인.
▶ 특징: 이 작품의 소설적 특징은 '금오신화'에 실려 있었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재자가인(才子佳人)이고 한문 문어체로서 사물을 극히 미화시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 안에 보이는 운문은 상황에 따른 정감을 극대화시켜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지만, 당대의 여건으로 본다면 모든 문장이 운문에서 완전히 탈피하기 어려웠다는 데 있다고 하겠다.
이해와 감상(1)
이 작품은 '양계(陽界)와 음계(陰界)의 인물의 만남, 이별, 양계의 인물이 속세를 버림'이라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주인공 양생은 비록 현실이 아닌 음계의 인물과 만나 사랑을 나누었지만 그것을 한갓 장난이나 일시적인 것으로 알지 않고 진실한 것으로 생각했다. 음계의 여인이 사흘 동안의 재가 끝난 후 공중에 나타나, 자신이 양생의 은덕으로 타국의 남자로 태어났음을 말하고, 양생에게 정업을 닦아 속세의 누를 벗어날 것을 부탁하지만, 양생이 장가도 들지 않고 속세를 떠났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이 작품은 설화적 소재에 자신의 창의성을 가하고 상당 수준의 소설적 형식을 갖춤으로써 소설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은 '양계(陽界)와 음계(陰界)의 인물의 만남, 이별, 양계의 인물이 속세를 버림'이라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주인공 양생은 비록 현실이 아닌 음계의 인물과 만나 사랑을 나누었지만 그것을 한갓 장난이나 일시적인 것으로 알지 않고 진실한 것으로 생각했다. 음계의 여인이 사흘 동안의 재가 끝난 후 공중에 나타나, 자신이 양생의 은덕으로 타국의 남자로 태어났음을 말하고, 양생에게 정업을 닦아 속세의 누를 벗어날 것을 부탁하지만, 양생이 장가도 들지 않고 속세를 떠났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이 작품은 설화적 소재에 자신의 창의성을 가하고 상당 수준의 소설적 형식을 갖춤으로써 소설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해와 감상(3)
김시습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려 있는 5편의 작품 중 첫번째 것으로 죽은 여자와의 사랑을 그린 명혼소설(冥婚小說)이다. 《금오신화》의 나머지 작품들로는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등이 전하며, 전부 몇 개의 작품이 더 실려 있었는지는 모른다. 판본도 김시습이 돌방에 감추어 내놓지 않아서 나머지 것이 없고, 필사본만 전하던 것을 일본에서 간행했는데 최남선이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알려졌다. 각 편들은 현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신비로운 내용이라는 점에서 명(明)의 구우(瞿佑)가 쓴 《전등신화(剪燈新話)》의 모방작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첫째, 최랑(이생규장전)과 같은, 굳건한 의지와 기상을 지닌 한국적 인물형의 창조,
둘째, 조선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주체의식,
셋째, 비극적 결말을 통한 작가의 기구한 운명의 투영,
넷째, 애민적 왕도정치사상의 표출 등은 작가적 개성과 창조성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유가적(儒家的) 선비의 처지를 견지하던 주인공들이 불교적(佛敎的) 인연을 통해서 만나지만 결국은 죽음이나 부지소종(不知所終:일생을 어디서 마쳤는지 아무도 모름)의 도가적(道家的) 모습으로 사라지는 공통점은 유·불·도 3교에 두루 통하고 화합을 지향했던 작가의 정신세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남원에 사는 가난한 노총각 양생(梁生)이 부처님과 자기의 소원을 걸고 저포놀이를 하여 이긴다. 때마침 같은 이유로 부처님께 기도하러 온 처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마침내 부모의 허락을 맡아 백년가약을 맺는다. 그런데 그 처녀는 왜구들이 노략질을 일삼을 때 정절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은 개녕동 처녀들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양생은 ‘속으로 은근히 의심했으나 그 아가씨의 맑고 고운 음성과 몸가짐이 아무래도 어느 명가집 따님이 한때의 정을 걷잡을 길 없어 이 어두움 속에서 담을 넘어 뛰어나온 것이 틀림없으리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의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처녀의 환신(幻身)은 자기가 겪은 여태까지의 일과 저승으로 갈 수밖에 없는 신세를 한탄하며 떠난다. 처녀와 헤어진 후 양생은 처녀를 위해 연 사흘간이나 재(齋)를 올려 준다. 이 때 공중으로부터 아가씨가 양생을 불러,
“그대의 은덕을 입어 이 몸은 이미 딴 나라 남자의 옷을 받아 태어나게 되었사옵니다. 유명(幽明)의 한계는 더욱더 멀어졌다 하나, 그대의 두터우신 은정을 어찌 길이 잊을 길 있겠사오리까. 그대도 마땅히 다시 정업(淨業)을 쌓아 저와 더불어 함께 영원한 윤회(輪廻)를 해탈케 하여지옵소서.”
라고 말한다. 그러나 양생은 정업을 닦지도 않고, 다시 장가도 들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혼자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양생이 정업을 닦으라는 부탁을 저버린 것은 불도 귀의로는 현세의 행복을 구할 수 없다는 현실적 사고의 반영으로 볼 수 있고, 깊은 산에 들어가 은자의 삶을 지낸다는 것은 비록 음계(陰界)의 여인과의 순간적인 결합이었지만 그것을 흥미나 장난쯤으로 여기지 않고 진실된 사랑으로 받아들였었는데, 그것이 깨져버린 데 대한 일종의 허무감의 반영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생사를 초월한 둘 사이의 사랑이 강렬하고 애절하게 표현되어 있어, 그만큼 주인공들의 고난과 갈등이 더욱 심각하게 느껴진다.
<만복사저포기>는 이렇듯 주인공 양생과 개녕동 처녀와의 기이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비록 환상적인 인간관계이긴 하지만 청춘 남녀들 사이에 맺어진 깨끗하고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생동감 있게 펼쳐 보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봉건적 도덕규범과 생활인습이 지배하던 당대 사회에서는 실현될 수 없었던 사랑의 승리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고루한 봉건적 윤리의 준수만을 강요하는 당대의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결말 처리는 그가 평소 지리산을 영봉(靈峰)으로 본 점을 고려한다면 도가 사상의 영향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사실은 실제로 지은이가 저포놀이를 좋아하여 자주 했으며, 20~30대에는 혼자 산을 돌아다니며 37세까지 노총각으로 외롭게 살았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이 작품은 작가 자신도 저포놀이를 통해 짝을 구했으면 하는 현실적 소망을 환상적 수법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한다. 작자는 자신의 삶과 크게 어긋나고 있는 현실 세계를 죽음이나 은둔처럼 심각하게 파악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품의 결말은 비극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나, 도교적 초월로 보기도 한다. 작자는 줄곧 귀신의 존재를 부정해 왔으며, 작품에 나타나는 죽은 여자는 민간 속신에 나타나는 문자 그대로의 귀신이 아니라 역설적 구조를 마련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일원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현실을 깊이 있게 관찰하여 현실이 지닌 문제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현실적·사실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으며, 당시의 시대상도 반영되었다.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려 있는 나머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시(詩)를 이용한 대화가 전체 구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양생과 미녀가 만나거나 헤어질 때 모두 시를 지어 주고받는데 이는 시인으로서의 매월당의 재질이 자유자재로 구사된 것으로써 작품의 예술성을 드높이는데 기여한다. 한편 이 작품은 죽은 자와 사랑을 나누는 ‘시애설화(屍愛說話)’와 이것이 더욱 승화된 ‘인귀교환설화(人鬼交歡說話)’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일찍이 중국의 신화집인 《수신기(搜神記)》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하며, 박인량의 《수이전(殊異傳)》의 ‘수삽석남(首揷石枏)설화’, ‘쌍녀분(雙女墳)설화=최치원설화’,《금오신화(金鰲新話)》의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도 소재(素材)면에서 유사하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
본관 강릉(江陵). 자 열경(悅卿). 호 매월당(梅月堂) ․동봉(東峰) ․청한자(淸寒子) ․벽산(碧山). 법호 설잠(雪岑). 시호 청간(淸簡).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서울 성균관 부근에 있던 사저(私邸)에서 출생하였으며, 신동 ․신재(神才)로 이름이 높았다.
3세 때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라는 시를 읊었다 하며, 5세 때 이 소식을 들은 세종대왕에게 불려가 총애를 듬뿍 받았다.
15세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가에 몸을 의탁했으나, 3년이 채 못 되어 외숙모도 별세하여 다시 상경했을 때는 아버지도 중병을 앓고 있었다. 이러한 가정적 역경 속에서 훈련원 도정(都正) 남효례(南孝禮)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그의 앞길은 순탄하지 못하였다.
이어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이름을 설잠이라 하고 전국으로 방랑의 길을 떠났다. 북으로 안시향령(安市香嶺), 동으로 금강산과 오대산, 남으로 다도해(多島海)에 이르기까지 9년간을 방랑하면서 《탕유관서록(宕遊關西錄)》 《탕유관동록(宕遊關東錄)》 《탕유호남록(宕遊湖南錄)》 등을 정리하여 그 후지(後志)를 썼다.
1463년(세조 9) 효령대군(孝寧大君)의 권유로 잠시 세조의 불경언해(佛經諺解) 사업을 도와 내불당(內佛堂)에서 교정 일을 보았으나 1465년(세조 11) 다시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입산하였다. 2년 후 효령대군의 청으로 잠깐 원각사(圓覺寺) 낙성회에 참가한 일이 있으나 누차 세조의 소명(召命)을 받고도 거절,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고, 《산거백영(山居百詠)》(1468)을 썼다.
이곳에서 6~7년을 보낸 후 다시 상경하여 성동(城東)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거백영 후지》(1476)를 썼다. 1481년(성종 12)에 환속(還俗), 안씨(安氏)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1483년 다시 서울을 등지고 방랑의 길을 나섰다가 충남 부여(扶餘)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죽었다.
그는 끝까지 절개를 지켰고, 유 ․불(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1782년(정조 6) 이조판서에 추증, 영월(寧越)의 육신사(六臣祠)에 배향(配享)되었다.
김시습 약전(梅月堂 金時習 ; 1435~1493)에 대하여
그는 신라 알지왕의 후예인 원성왕(元聖王)의 동생 주원의 후손이며, 무반 계통의 충순위를 지낸 김일성(金日省)의 아들로 서울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났다. 생후 8개월에 글뜻을 알았고 3세에 능히 글을 지을 정도로 천재적인 재질을 타고났다.
우레 소리도 없는데 어인 천둥인가. 無雨雷聲何天動
노란 구름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네. 黃雲片片四方分
이 시는 유모가 보리 방아 찧는 것을 보고 지은 시라 한다. 5세에는 신동(神童)이라는 소문이 알려져, 재상 허조(許稠)가 불러,
“얘, 나는 이미 늙은 사람이니 ‘老’字로 글 한 구절 지어 다오.“
하자 서슴지 않고,
늙은 나무에 꽃 피니 그 마음 늙지 않았구려. 老木開花心不老
라 지어 무릎을 치게 만들었고 이 소문이 세종에게 알려져, 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동자의 학문은 마치 흰 학이 푸른 소나무 끝에서 춤추는 것 같도다. 童子之學白鶴舞靑松之末
라는 세종의 시험에,
어진 임금님의 덕은 마치 황룡이 푸른 바다 가운데서 노는 것과 같습니다. 聖主之德黃龍翻碧海之中
라고 완벽한 대구로 화답하여, 세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후일 중용하리라는 약속과 함께 비단을 하사 받기도 했다. 마침 그 자리엔 세자인 문종과 세손인 단종이 용상을 붙잡고 앉아 있었는데, 세종은 김시습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둘이 장차 너희 임금이 될 것이니 잘 기억해 두라.”
이 말이 그로 하여금 일생을 광인의 행세로 처세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 뒤 13세까지 당시의 대석학인 이계전·김반·윤상 등에게서 유교적 소양을 쌓았다. 그의 이름인 시습(時習)도 《論語》학이편(學而篇) 중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그는 호를 매월당이라 했으며 동봉·청한·췌세라는 필명을 갖고 있었다.
그는 21세 때 과거 준비로 삼각산 중흥사에서 수학하던 중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그 길로 삭발하고 중이 되어 방랑의 길을 떠났다. 이후 약 십여년 간 전국 각지를 방랑하면서 민중들의 생활에 접근하여 그것을 보고 느낀 바를 사실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평안도 일대를 돌아보고 쓴 기행시집 《탕유관서록》, 강원도 일대의 조국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탕유관동록》, 호남지방에 대한 생활체험에 기초한 시집 《탕유호남록》 등이 그것이다. 31세 되던 해에 경주 남산(금오산)에서 성리학과 불교에 관해 연구하는 한편,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37세 이후 약 10년간은 농사를 직접 짓고 환속하는 한편 결혼을 하는 등 평범한 속인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러다가 ‘폐비윤씨사건’으로 현실에 불만을 품고 방랑하다 충청도 홍산 무량사에서 59세의 나이로 병사한다.
김시습이 금오산에 들어가서 소설을 쓰게 된 것은 후에 일부 문인들처럼 산 속에 파묻혀 스스로의 즐거움을 찾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보고들은 체험을 바탕으로 당대 사회의 불합리성을 고발하고 자기의 뜻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을 써서 그것을 후세에 전하려고 한 데 있다. 이에 대해서는 《용천담적기》에
“김동봉은 금오산에 들어가 글을 지은 다음 그것을 돌방 속에 넣어 두면서 ‘훗날에는 꼭 알아 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글들은 대개가 다 기이한 것을 말하는 방법(述異寓意-술이우의)으로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금오신화》가 바로 그 글들이다.”
라고 기록된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보지도 못한 글을 쓰고 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는 창작과정에서 양반사대부들의 모방주의적이며 사대주의적인 경향을 반대했으며, 진지한 탐구정신과 독창적인 열정을 지니고, 이전 시기에 흔히 써내려오던 범상한 수법이 아닌 새로운 산문형식의 소설을 창작했다. 이러한 사실은 덮어놓고 《금오신화》가 《전등신화》의 모방작이라는 견해를 부정하는 것으로서 그의 소설 창작과정상의 합법칙적 과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 나라 소설 발전의 역사적 필연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꼴일 것이다.
그의 문학세계를 알 수 있는 현존 자료로는 그의 시문집인 《매월당집》과《금오신화》가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가 주로 《금오신화》에만 치우쳐 왔으나 2,200여수나 되는 그의 주옥같은 시들은 그가 당시의 대표적 시인 중의 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조선 전기 사상계에선 찾아볼 수 없는, 유·불·도 삼교에 걸쳐 다양하게 연구한 사상가임도 알 수 있다. 그의 사상과 문학의 다양성은 그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했음을 간접적으로 알게 해준다. 당시의 사상을 올곧게 하기 위해 유·불·도 삼교의 장점만을 살려 융화·일치시키려 했기에 후대에 퇴계 이황으로부터 이인(異人)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불교와 도교의 신비론을 배척했지만 불교의 자비정신을 바탕으로, 도교의 기(氣)를 다스리면서 성리학의 주기론적 관점에서 모든 인간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당시로서는 이단자였다. 그러나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이 김시습을 알기는 하였으나 진실로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김시습에 관한 허다한 기행이적(奇行異跡)의 이면에서 그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고 정확한 자리매김을 해야 하겠고, 이를 위해서는 그가 살던 시대를 포함, 그가 남긴 모든 작품의 내용도 면밀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그리 지체 높지 못한 무신 가계(아버지가 충순위라는 말직의 무관이었음)에서 태어난 그는 뛰어난 재질과는 관계없이, 당시의 모든 객관적 사회적인 조건들(조선 태조의 무관억제책)로 인해 순탄한 길을 밟을 수 없었으며, 정치적 변혁기에 조선 전기에 새롭게 일어나는 신진사류의 동반자로서 굽힘 없는 정치적 양식 때문에 타협과 저항의 양극을 오가며 좌충우돌했던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척불숭유의 사상 교체기에 상반된 사상들의 합치점을 발견하여 독특한 사상 체계를 확립했으며, 고려 시대에 패관 문학을 발전시켜 본격적인 고대소설을 개척했다. 사람들은 그의 풍부한 체험과 상상력의 소산인 《금오신화》를 통해 상실되었던 인간성을 비로소 회복하게 되었음은 물론, 동시에 자유와 해방의 비원(悲願)을 성취할 수 있었다.
기구했던 김시습의 삶
‘귀신’하면 우리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입 가장 자리에 피를 길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무덤을 파헤치기도 한다. 그러나 만복사저포기에 나오는 귀신은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며 오히려 사랑의 대상이다. 더구나 여기에 나오는 귀신 처녀는 가슴에 한과 슬픔을 지니고 죽은 사람이다. 양생은 처녀의 슬픔과 한을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사랑을 했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원치 않는 이별을 했다. 결국 이 작품의 주인공은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만날 수 있었고, 그 만남은 영원히 지속될 수가 없었다. 주인공이나 지은이가 바라는 현실은 삶과 죽음도 넘어선 사랑이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흔히 우리나라의 고전 소설이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데 비해 금오신화는 대부분 비극적인 결말을 맺고 있다. 만복사저포기에서 부처님께 좋은 인연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원하던 양생의 소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소망이다. 그러나 귀신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짐으로써 그런 욕망조차도 헛된 것임을 보여 준다.
김시습의 이런 세계관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는 생육신이 한 사람이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것에 반대한 살아 있는 여섯 명 신하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뛰어난 재주를 가졌지만 일평생 벼슬자리에 뜻이 없었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긴 뒤 읽던 책을 불태우고 도망하여 중이 되기도 했다. 세조가 왕위에 있는 동안 그는 줄곧 속세를 떠나 살았다. 금오신화도 그 시절에 지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오신화에는 비극적 세계관이 담겨 있는 것이리라.
김시습의 문학적 세계관
▶ 김시습은 <금오신화>에서 죽은 사람을 살려내어 부당한 현실을 밝히려 하였다. 김시습이 밝히려 한 '자신의 뜻'은 무엇인가.
주인공이 행복을 성취해가는 운명의 상승과정을 거쳐 결국 행복이 좌절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주인공의 "도덕적인 이념" 때문이다. 여인이 목숨보다 정절을 중히 여겨 죽음을 당한 것이나, 양생이 여인과의 의리를 지켜 '다시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고 살았던' 것이나 모두 주인공들의 도덕적 진실성 때문이다.
<금오신화> 이전의 전기 문학인 <수이전>에 실린 작품이나 <조신의 꿈>에서 비현실의 세계는 단지 흥미거리나 교훈적 의미만을 주는데 그치고 있어 이 작품들이 소설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금오신화>에서는 비현실의 세계를 비현실로 인정하지 않고 현실로 받아들이려고 하는데서 부당한 세계의 횡포에 맞서는 자아의 의지를 보여준다. 자아와 세계의 대립을 소설이 성립하는 주된 요인으로 볼 때, 바로 이 점에 <금오신화>가 소설이 될 수 있는 까닭이 있다고 하겠다.
작가 김시습에게 이러한 자아와 세계의 대립의 계기는 "도덕적 이념"의 문제에 있었다. 처음 죽은 여인을 만나 인연을 맺기로 약속하고부터 그것을 끝까지 이행하는 것은 서로 의리를 지키는 것이다. 이로 볼 때 김시습이 말하려 한 '의리나 정절'은 김시습의 생애에서 세조의 왕위 찬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리문학사에서 <금오신화>와 같은 소설 갈래를 김시습이 창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율곡은 김시습이 "성질이 굳세고 곧아 세속을 분개하여 심기가 답답하고 편안하지 못하매 스스로 세상을 따라 오르고 내릴 수 없음을 헤아린 나머지 드디어 그 몸을 내던져 세상 밖에서 놀았다."고 하였다. 김시습 자신은 "선비는 자신과 세상이 모순이 있으면 물러가 살면서 自樂하는 것이 대체로 그 본분인데 어떻게 남의 비웃음과 비방을 받아가며 억지로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을 수 있겠나."고 하였다.[身世矛盾] 세상과 자기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 가득찬 '세속을 분개하여' 세상의 기존 질서를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시습이 봉건체제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더욱 철저한 봉건 체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시습은 [명분설]에서 "천자, 제후, 공경, 대부, 사, 서인이 명이고 상하, 존귀, 귀천이 분이니 이는 넘어설 수 없다."고 하였다. 김시습은 '봉건체제 안에서 바람직한 왕도정치[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롯한 사회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다. 그래서 김시습은 그러한 세상과 어울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에게 마땅한 대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몸을 세상 밖에 내던져 방외인의 길을 걸었을 뿐이다.
<금오신화> 5편은 모두 '불우하거나 현실에 뜻을 얻지 못한 주인공이 비현실적 존재나 비현실적 사건을 통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을 달성하거나 혹은 현실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기 이념의 정당성을 확인한 후 다시 현실로 돌아와 죽음을 맞이하거나 세상으로부터 자취를 감추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금오신화>에 나타난 이러한 비극적 현실 인식[세계관] 다시 말해 자신이 올바른 이념이나 진실을 지니고 있지만 부당한 현실 세계에서는 쓰이지 못한다는 생각은 사회. 역사적인 면에서 처음으로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한 초기 사림의 의식의 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시습은 당대 집권층인 훈구세력에 저항하여 그 시대 현실(봉건이념과 괴리된 현실: 당시 집권층이 저지르는 불의)을 비판은 하지만 마땅히 적극적인 대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던 초기 사림의 한 사람이었다.
김시습이 금오산에 들어가 책을 지어 석실에다 간직하고 "후세에 반드시 나를 알 자가 있을 것이다."하고 말했다 하는데, 그의 비극적인 세계관을 잘 나타내주는 말이라 하겠다.
김시습과 금오신화 (金鰲神話)
김시습은 의협심에 불탔으며, 방랑객이었던 김시습은 다섯 살 때에 이미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에 통하여 신동(神童)이라는 이름을 들었고 집현전 학사 최치운(崔致雲)이 그의 제주를 보고 경탄하여 이름을 시습(時習)이라 지어줘 오늘날도 시습으로 불려진다. 그가 용장사에서 지은 「금오신화(金鰲神話)」는 바로 그의 학문과 사상의 결정체가 되며, 최초의 한문 소설로서 국문학사의 금자탑이 되고 있다. 금오신화에는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서 지금가지 전하고 있는데, 비록 한문(漢文)으로 된 작품이기는 하나 우리 문학사 나 소설사에서는 지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상 있기 드문 기인(奇人)이요 지성인이요 또는 멋쟁이라고 일컬어 오는 매월당(梅月堂)이니 만큼 그의 작품도 엽기성(獵奇性)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초현실적(超現實的)인 새 세계를 갈망하는 의욕이 강렬하게 나타나 있다.
작자는 작중인물을 통해 자신의 사상, 감정을 표현하고 인생관 내지 세계관(世界觀)을 반영시킨다. 5편의 단편중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는 살아 있는 노총각 양생(梁生)이 이미 죽은 처녀의 혼백과 연애를 하는 기발한 이야기다. 언뜻 보기에는 황당무게한 작품이라고 하겠으나, 현실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 주인공은 이 초현실적인 존재와의 연애에서 사랑을 흡족히 체험한다는 것은 우선 창작의식의 차원이 높다는 것을 설명 해준다.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도 역시 이런 사랑을 테마로 한 소설이다. 사랑을 위해서 젊은 남녀가 보수적인 인습과 문벌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사선(死線)까지 넘어서서 그 사랑을 쟁취했던 것이다. 그 당시 우리 사회에선 자유연예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할 때인 데도 김시습은 그 활달한 상상력을 구사하여 청춘 남녀의 사랑의 세계를 확대하여 그려냈던 것이다. 이 두 작품이 이색적인 연애소설인데 반하여 나머지 세 작품은 한결같이 현실을 벗어난 또 다른 세계를 무대로 한 단편들이다.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는 욕구불만의 지식인이 저승에 가서 인간의 생사(生死)를 심판하는 왕(王)이 되는 것을 주제로 했고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도 어떤 문사가 용궁 잔치에 초대되어 상량문을 쓰고 용왕국을 두루 순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는 옛날 고조선의 서울인 평양에 가서 옛사람과 대화하고 교유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와같이 현실도피가 단순한 패배의식에서 머무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랑, 새 세계와의 대화를 지향하는 이 작품은 곧 작자 김시습의 이데아의 세계와도 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시습이 이 작품을 쓸 때만 하더라도 금오산(南山)일대에는 보살들의 목탁소리, 경소리,염불소리, 그리고 은은히 울려 퍼지는 종소리,북소리,바람소리,계곡의 물소리까지 한데 어울려 인도(印度)의 사파세계를 방불케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목에 앙상하게 얽혔던 조락의 서글픔도 이젠 또다시 옛 일인양 산등성 굽이굽이 도로엔 천년의 얽힌 사연을 들으며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바쁘기만 하다.
참고자료 : 소설문학에 나타난 한(恨)
소설에 있어서는 개인과 개인의 갈등, 개인과 사회와의 갈등, 또는 개인과 국가(혹은 민족) 사이의 갈등의 심도에 따라 한(恨)이 되기도 하고 원(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갈등의 심도가 낮으면 한으로, 심도가 깊으면 원(怨)이 되는 것이다. 또, 갈등의 심도가 깊다 할지라도 원이 복수 의지로 발전하지 않고 종교적 해한(解恨)의 차원에서 극복될 때, 즉 한이나 원이 휴머니즘으로 극복 승화될 때 그것은 화해와 사랑으로 정화된다. 여순 반란 사건을 소재로 한 김동리의 '형제'는 원한이 복수로 발전하지 않고 휴머니즘적 인간의 사랑으로 극복된 좋은 예이다.
아무튼, 소설은 시에 있어서보다 인간적 갈등의 심도가 크기 때문에 대부분 원한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타력이나 가학적이 아니고, 자기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 후회하고 희구하고 마음 아파하는 데서 생기는 자한(自恨)이나 회한, 정한이 소설 작품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나 '이생규장전', 김만중의 '구운몽' 등은 자한의 소망을 작품을 통하여 이루어 본 것들이다. 이와 같은 자한, 회한, 정한은 뒤에 김동인의 '배따라기'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이어지며, 우리 나라의 서정주의에 가까운 소설들은 모두 이러한 자한, 회한, 정한이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고대 소설에서는 정한보다는 원한을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개인적인 원한을 다룬 작품으로는 '운영전', '사씨남정기', '장화홍련전' 등이 있고, 궁중의 원한이 나타난 궁중 소설로는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어느 궁녀의 '계축일기'(일명 서궁록), '인현왕후전' 등이 있다. 개인과 사회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결한과 해한이 나타난 작품으로는 허균의 '홍길동전'과 작자 미상의 '춘향전'을 들 수 있다. 또 민족의 원과 한을 다룬 '임진록'은 패배한 민족의 역설적인 해원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나라 현대 소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이광수의 '무정'에도 망국한이 보인다. '무정'은 바로 원한의 소리이다. 일본 헌병에게 잡혀 감옥살이를 하는 아버지에게 차입하여 줄 것을 사기 위하여 박영채는 기생으로 몸을 판다. 그러나 그 몸값을 중개인에게 사취당하고, 대동강에 빠져 자살하려고 한다. 박영채의 자살 기도 동기는 표면적으로는 정절이 깨어진 데 있지만, 실제로는 이형식에 대한 우회적 복수에 있다. 국권 상실로 이한 망국한이 박영채에게 투영된 것으로, 냉혹한 사회와 이형식에 대한 박영채의 원한은 곧 망국한이다. '무정'의 망국한은 채만식, 염상섭을 거쳐 이무영, 심훈, 김유정, 나도향, 김동리, 박경리, 등의 소설에서 나타나며, 1950년대 이후에는 조국 분단의 한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호철의 '월남한 사람들', 이문구의 '해벽', 김원일의 '노을', 윤흥길의 '장마',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 한승원의 '안개바다', 조정래의 '인간의 탑', 유재용의 '누님의 초상', 현기영의 '순이 삼촌' 등에 분단의 한, 고향 상실의 한, 동족 상잔의 한 등 분단 시대의 민족의 한이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대 소설에서와는 달리, 신소설 이후의 소설에서는 원한이 복수를 통하여 해원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원한 감정은 복수 의지로 해원되지 않고 용서와 화해로 풀려 소설 미학으로 수용되고 있다. 또 가학자(원한을 준 사람) 쪽에서 죄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풀어 주려고 한다. 우리의 현대 소설에서 원한 감정은 휴머니즘으로 극복되고 있으며, 특히 6.25 소설들은 원한 감정을 화해와 용서로 풀어 민족의 동질성을 찾으려 하고 있음은 퍽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문순태, 한(恨)>
만복사 저포기(萬福寺樗蒲記) 형성평가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라.
전라도 남원에 양생이란 사람이 있었다. 일찍이 어버이를 여의고, 아직 장가를 들지 못하고 ⓐ홀로 만복사(萬福寺)동쪽 방 한 칸에서 외로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 절간 방 앞에 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때마침 봄을 맞아 ⓑ꽃이 활짝 피어 온 뜰 안이 은세계를 이루었다. 그는 달밤이면 배나무 밑을 거닐면서 시조를 읊조렸다.
한 그루 ㉠배꽃나무 적적함을 짝하니
시름도 많아라 ㉡달 밝은 이 밤이여.
사나이 홀로 누운 외로운 창가에
어디서 들려 오나, 고운 임 ㉢퉁소 소리
외로운 ㉣비취는 제 홀로 날아가고
짝 잃은 원앙새 맑은 물에 노니는데.
뉘집 인연 그리며 바둑을 두는가.
㉤등불이 가물 가물 이내 신세 점치는 듯
양생이 시를 읊고 나니, ⓒ문득 공중으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하되,
“그대가 참말로 고운 배필을 만나고자 할진댄 그 무엇 근심할 것 있으랴.
이 소리를 듣고 양생은 크게 기뻐하여 마지아니하였다.
그 이튿날은 곧 삼월 스무나흘이었다. 그 고을에서는 해마다 이 날을 맞게 되면 많은 젊은 남녀들이 반드시 만복사를 찾아 저마다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
이 날 양생은 저녁 예불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법당으로 들어가 자기 소매 속에 깊숙이 간직해 가지고 갔던 저포를 내어, 부처님 앞에 던지기에 앞서 스스로 바라는 바를 사뢰었다.
“오늘 제가 부처님을 모시옵고 저포 놀이를 해 볼까 합니다. 만약 ⓑ소생이 지오면 법연(法筵)을 베풀어 부처님께 보답해야 할 것이오며 그렇지 아니하여 만일 부처님께서 지신다면 반드시 아름다운 여인을 소생의 배필로 점지하여 주시옵기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렇게 축원을 한 다음 문득 저포를 던지었더니 과연 양생이 승리하였으므로 곧 그는 부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사뢰되,
“인연은 이미 정하였사오니, 소생을 속이지 마시기 바라옵니다.”
하고, 양생은 불탁(佛卓)밑에 숨어서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 아름다운 아가씨가 들어왔다. 그녀는 열대여섯밖에 되지 않았는데, 두 가닥으로 땋은 머리를 깨끗이 단장하고 태도가 아름다운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같았다. 가만히 보니 그 아름답고 고운 모습은 이루 형용하기 어려웠다. 휜 손으로 등잔에 기름을 따라서 등불을 켜고, ⓔ향로에 향을 피운 뒤에 세 번 절을 하고 꿇어 엎드려 슬피 탄식하여 말하되, “인생이 박명(薄命)하여 어찌 이와 같을 수가 있사오리까.“ 하고 품 속에 간직하였던 축원문(祝願文)을 꺼내어 부처님 탁자 위에 드리니 그 글에 고하였으되,
“아무 고을 아무 동리에 사옵는 소녀는 외람(猥濫)됨을 무릅쓰고 부처님 앞에 사뢰옵니다. 이즈음 ㉥변방이 허물어져 왜도적들이 쳐들어와 싸움이 쉴 날이 없사와 봉홧불이 해마다 그칠 날이 없사옵니다. 그리하여 건물이 파괴되고 백성을 노략하므로, ㉦친척과 종들이 동서 사방으로 피난하여 정처 없이 유리걸식(遊離乞食)하였나이다. ㉧수양버들과 흡사한 가냘픈 소녀의 몸이오라, 먼 길에 피난이 여의치 않아 깊은 방안에 들어 엎디어 금석 같은 굳센 정절을 더럽힘이 없었건만, 야속하온 우리 부모, 이 여식의 수절하옴이 마땅치 않다 하여 ㉨궁벽(窮僻)한 곳에 옮겨 두어 초야에 묻혀 사옴이 하마 속절없이 삼 년이나 되온지라, 달 밝은 가을 밤과 꽃피는 봄 아침에 고단한 영혼 이어 위무(慰撫) 할 길이 있사오리까. 흐르는 휜 구름과 쉬임 없는 물결 소리 들으며 무료한 세월을 보내옵나니, 그윽이 깊은 골자기에서 평생의 박명 박행(薄命薄幸)을 탄식 하오며, 홀로 공규(空閨)를 지키어 기막힌 밤을 보내오니, 임 그리운 이내 정이 채란(彩鸞)의 외로운 춤을 홀로 슬퍼하였사옵더니, 세월이 흐르고 흘러 서러운 혼백(魂魄)은 맘 둘 곳 없사옵고, 기나긴 여름날과 겨울 밤에는 간담(肝膽)이 찢어지고 창자마다 끊어질 듯하옵니다. 어지신 부처님이시여, 자비와 연민(憐憫)함을 베푸시옵소서, ㉩인간의 한평생이 이미 정해져 있사옵고 선악(善惡)의 업보(業報) 또한 피할 길 없사오니, 바라옵건대 하루바삐 꽃다운 인연을 맺도록 배필(配匹)을 정하여 주시옵소서.“
여인은 축원문(祝願文)을 마치고 난 후에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김시습, <만복사저포기>
이 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① 처녀의 부모와 처녀는 따로 떨어져 살고 있다.
②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시대는 고복 격양(鼓腹擊壤), 태평 성대(太平聖代)의 시대이다.
③ 양생과 처녀의 공통된 정서는 외로움이다.
④ 양생과 처녀는 둘 다 불심을 가지고 있다.
⑤ 위 소설의 주인공들은 재자가인(才子佳人)의 모습을 보인다.
ⓐ-ⓔ가운데 인간의 일상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요소가 표출된 것은?
① ⓐ ② ⓑ ③ ⓒ ④ ⓓ ⑤ ⓔ
㉠-㉤가운데 시어가 의미하는 바가 다른 하나는?
① ㉠ ② ㉡ ③ ㉢ ④ ㉣ ⑤ ㉤
㉥-㉩중, 처녀가 괴로워하는 이유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① ㉥ ② ㉦ ③ ㉧ ④ ㉨ ⑤ ㉩
이 글을 읽고 난 후, 작품과 독자와의 관계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로 가장 거리가 먼 것은?
① 이 작품은 시와 소설이 적절히 배치되어 쓰여졌으므로 나는 혼합 장르적인 특성을 고려해서 읽어 보려고 해.
② 나는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낸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두는 것이 이 소설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이 작가가 쓴 다른 작품들을 읽어 보고 이 작품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를 정리할 거야.
③ 나는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두 사람의 성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따라서 두 사람이 한 말을 통해 그들의 성격을 분석하며 읽고 싶어.
④ 조선 시대에 쓰여진 소설이니만큼 당대의 문화, 풍속, 종교 등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리라 생각해. 나는 조선시대의 사회 개혁 정신인 실학과 동학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어.
⑤ 나는 우리 나라 소설사에서 이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 싶어. <홍길동전>과 같은 다른 고대 소설과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싶어.
이 글에 나타난 처녀의 심정과 가장 유사한 정서를 담은 것은?
① 당시(當時)에 녀ᄃᆞᆫ 길을 몇 해링 빛려 두고
어듸 가 ᄃᆞᆫ니다가 이제야 도라온고?
이제나 도라오나니 년 듸 마음 마로리.
② 창(窓)내고자 창 내고자 이내 가슴에 창 내고자
고보장지 세 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져귀 수돌져귀 빛목걸새
크나큰 장도리로 둑닥 박아 이 가슴에 창 내고자
③ 잇다감 하 답답할 제면 여다져 볼가 ᄒᆞ노라.
높으럭 나즈락 ᄒᆞ며 멀기와 갓깁기와
모지락 동즈락 ᄒᆞ며 길기와 져르기와
평생(平生)을 이리 ᄒᆞ엿시니 무삼 근심 잇시리.
④ 오동(梧桐)에 듯는 빗발 무심(無心)이 듯건마다
나의 시름 하니 닙닙이 수성(愁聲)이로다.
이 후(後)야 잎 넙은 남기야 심을 줄이 이시랴.
⑤ ᄇᆞ람이 눈을 몰아 산창(山窓)에 부딪치니.
찬 기운 ᄉᆡ여 드러 ᄌᆞᆷ든 매화(梅花)를 침노(侵擄)한다,
아무리 얼우려 ᄒᆞ인들 봄 뜻이야 앗을쏘냐.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님이 오마 하거늘 저녁밥을 일지어 먹고 중문(中門)나서 대문(大門) 나가 *지방(地方) 우희 치다라 안자 *이수(以手)로 가액(價額)하고 오는가 가는가 건너 산 바라보니 *거머흿들 서 있거는 저야 님이로다.
보선 버서 품에 품고 신 버서 손에 쥐고 *겻븨님븨 님븨곰븨 천방지방 지방천방 즌듸 마른듸 갈희지 말고 워렁충창 건너가서 정(情)엣말 하려하고 겻눈을 흘긧 보니 상년(上年) 칠월(七月) 사흗날 *갈가벅긴 *주추리 삼대 살드리도 날 속여다.
모쳐라 밤일싀만정 행여 낫이런들 남 우일 번하괘라.
(나) 찰하리 잠을 들어 꿈의나 보려 하고 바람의 디난 닙과 풀 속에 우는 즘생, 므스 일 원수로서 잠조차 깨오난다. 천상(天上)의 견우직녀(牽牛織女) 은하수(銀河水) 막혀서도 칠월칠석(七月七夕) 일년일도(一年一度) 실기(實技)치 아니거든 우리 님 가신 후는 무슨 약수(弱水) 가렷관듸 오거니 가거니 소식(消息)조차 끄쳣는고. 난간(欄干)의 비겨 서서 님 가신 데 바라보니 초로(草露)는 맷쳐 잇고 모운(暮雲)이 디나갈 제 죽림(竹林) 프른 고데 새 소리 더욱 설다. 세상의 서룬 사람 수업다 하려니와 박명(薄命)한 홍안(紅顔)이야 날 같은 이 또 이실가. 아마도 이 님의 지위로 살동말동하여라.
(다) 이즈음 변방이 허무러져 외도적들이 쳐들어와 싸움이 쉴 날이 없사와 봉홧불이 해마다 그칠 날이 없사옵니다. 그리하여, 건물이 파괴되고 백성을 노략하므로 친척과 종들이 동서 사방으로 피난하여 정처 없이 유리걸식(遊離乞食)하였나이다. ㉠수양버들과 흡사한 가냘픈 소녀의 몸이오라, 먼 길에 피난이 여의치 않아 깊은 ㉡방안에 들어 엎디어 금석 같은 굳센 정절을 더럽힘이 없었건만, 야속하온 우리 부모 이 여식의 수절하옴이 마땅치 않다하여 ㉢궁벽한 곳에 옮겨 두어 초야에 묻혀 사옴이 하마 속절없이 삼 년이나 되온지라, 달 밝은 가을 밤과 꽃 피는 봄 아침에 고단한 영혼 어이 위무(慰撫)할 길 있사오리까. 흐르는 흰구름과 쉬임 없는 물결 소리 들으며 무료한 세월을 보내옵나니, 그윽이 깊은 골짜기에서 평생의 박명 박행(薄命薄幸)함을 탄식하오며
㉣홀로 공규(空閨)를 지키어 기막힌 밤을 보내오니, 임 그리운 이내 정이 ㉤채란(彩鸞)의 외로움 춤을 홀로 슬퍼하였삽더니 세월이 흐르고 흘러 서러운 영혼 맘 둘 곳 없사옵고 그러구러 날은 가고 밤은 와서 구곡간장 다 녹아 없어지나이다. 어지신 부처님이시여, 자비와 연민함을 베푸시옵소서. 인간의 한평생이 이미 정해져 있사옵고 부모의 백년가약 또한 피할 길 없사오니, 바라옵건대 하루 바삐 꽃다운 인연과 배필을 점지해 주시옵소서.
*지방:문지방
*이수로 가액하고:손을 이마에 대 고
*거머흿들:검은빛과 흰빛이 뒤섞 인 모양
*겻븨님븨 님븨곰븨:거듭거듭
*갈가벅긴:갉아 벗긴
*주추리:삼대의 줄기
(가)~(다)에 공통되는 지배적 정서는?
① 반가움 ② 그리움 ③ 아쉬움 ④ 한스러움 ⑤ 후회스러움
(가)와 시적 정황(詩的情況)이 가장 유사한 것은?
① 어름 우희 댓닙 자리 보아 님과 나 와 어러주글망정 / 정둔 오늘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 오시라.
② 이링공 뎌링공 하야 나즈란 디내와 손뎌 /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 호리라.
③ 샥옥셤셤(削玉纖纖)쌍수(雙手)ㅅ길헤 / 샥옥셤셤(削玉纖纖)쌍수(雙手)ㅅ길헤 / 위 휴슈동유(携手同遊)ㅅ경(景) 긔 엇더하니잇고.
④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난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萬重雲山)에 어늬 님 오리 마난 / 디난 닢 우난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⑤ 어져 내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다냐 /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난, 제 구타여 /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나)의 밑줄 친 말 중, 작중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것은?
① 직녀(織女) ② 약수(弱水) ③ 초로(草露) ④ 모운(募雲) ⑤ 새
㉠~㉤중, (다)의 화자가 이승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 것은?
① ㉠ ② ㉡ ③ ㉢ ④ ㉣ ⑤ ㉤
학습 문제
이 작품이 본격적인 소설로서의 기본 요건을 갖추고 있다면 그것은 어떤 점 때문인가?
우리 나라 고전소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권선 징악적 주제나 행복한 결말과는 달리 작품이 끝날 떼까지 줄기차게 긴장감을 주며 대결 양상을 지속시킴은 물론 치열한 갈등을 형성시켰다. 등장 인물의 성격 창조에서도 발생 초기 소설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양생과 개녕동의 처녀, 이생과 최랑, 그리고 박생과 한생 등은 각각 다 종전의 전기나 설화에 나오는 그러한 인물이 아니라 소설이 묘사한 생활 속에서 숨쉬고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간들이다. 그들의 성격과 생활을 잘 살펴보면 거기엔 인물전기 작품들에 나오는 가문과 가계를 소개하는 지루한 기록이라든가 ‘공명출세담’과 같은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음은 물론, 종전의 수이전체의 설화에서 자주 보이는 인물에 대한 평면적인 소개와 전개가 상당히 극복되었고, 거기서 보여주지 못했던 등장인물들의 구체적인 성격과 행동, 그들의 생활 환경을 펼쳤다. 기연기봉(奇緣奇逢-기이한 인연과기이한 만남)은 종전과 다를 바 없지만, 예를 들면 《이생규장전》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가로막는 풍파가 세 번씩이나 반복되지만 그때마다 거기에 굴하지 않고 극복해 나가는 등장 인물의 성격적 특성이 사실감 있게 전개되면서 비로소 소설 형태에 맞는 이야기형식으로 발전하게된다.
중요 대목마다 등장하는 시(詩)는 이 작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자.
대화시 형식으로 된 서정시들을 삽입하여 주인공들의 성격, 특히 그들의 내면세계를 서정시의 짧고도 함축성 있는 표현 속에서 정서적이고도 깊이 있게 보여 준다.
《금오신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작품은 무엇인가?
중국 명나라 구우(瞿佑)가 쓴 《전등신화(剪燈新話)》
《금오신화》의 국문학사적 위치를 알아보자.
조선조에 들어와 민중 사이에 구전되던 설화와 고려의 패관 문학을 계승하고 가전(假傳)의 전통 위에 중국의 전기 소설(傳奇小說)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장르로서의 소설을 성립시켰고, 소설로서의 골격을 갖추고 나온 최초의 작품이다.
< 풀이 및 정답 >
② 김시습,<만복사저포기> 『금오신화』 이 글의 내용에 의하면, 처녀가 살고 있는 시대는 왜적의 침입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한 상황이다. 따라서 고복격양(鼓腹擊壤), 태평성대(太平聖代)와는 거리가 멀다.
③ 인간의 일상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요소란 고대 소설의 특징으로 비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거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요소가 표출된 것은 ⓒ이다.
② ‘배꽃 나무’, ‘퉁소소리’, ‘비취’, ‘등불’은 모두 외로운 작가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주는 단어들이다. ‘달’은 작가의 심정과 대조적으로 환하고 밝은 세상을 뜻한다.
. ④ 처녀의 외로움은 짝을 만나지 못해 독수공방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부모에 의해 초야에 갇혀 사는 신세로부터 비롯됨이다.
④ 소설을 읽을 때에는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물, 사건 배경, 문체, 작가의 특성 등을 고려한다. 하지만 당대의 배경 연구는 중요하나 특별히 실학과 동학에 대한 연구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② 축원문의 내용으로 보아, 처녀는 외로움에 잠겨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①은 학문 수행에 전념할 결의를 나타내고 있고, ②는 외로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마음의 창을 내고자 하는 심정을 담고 있다. ③은 형편대로 맡겨 자연스럽게 사는 생활을, ④는 비오는 날 수심에 젖은 심정을 노래하고 있으며, ⑤는 매화의 의지를 찬양한 노래이다.
② (가) : 임에 대한 기다림, (나) : 임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다) : 임을 만나고 싶은 마음. 이 글들은 모두 임과 관련된 내용 즉, 남녀의 애정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들에 나타난 공통 정서는 그리움으로 볼 수 있다.
④ (가) 사설 시조, (나)허난설헌, ‘규원가’, (다)김시습, ‘만복사저포기’. (가)는 임이 자기를 찾아온 것으로 생각하여, 그를 만나기 위해 허둥지둥 갔다가 착각임을 알고 부끄러워한다는 내용이다. 임이 자기를 찾아온 것으로 착각한다는 점에서 시적 정황이 ④와 일치한다.
⑤ ①은 화자와 상반되는 상황을 지닌 존내, ②은 임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 ③은 화자가 흘리는 눈물, ④는 화자의 슬픈 정서를 돕는 배경, ⑤가 화자 자신과 정서상 동일성을 지니고 있는 사물이다.
③ 이 소설의 여주인공인 이 여인은 전쟁 상황에서 목숨을 잃는 귀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