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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계(花王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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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추 정박사 2023. 6. 1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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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영역 > 문학 > 고전문학 > 고전산문 > 창작설화

 

 

 

화왕계(花王戒)

 

󰏐 핵심 정리

 

󰏐 설화의 배경

 

어느 여름날 신문왕이 설총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오던 비도 개었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니,, 비록 진수성찬과 서글픈 음악이 있으나 고상한 이야기와 멋있는 익살로 울적한 마음을 푸는 것이 좋을 것같소, 그대는 기이한 이야기가 있거든 나를 위하여 이야기하여 주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에 설총이 옛날 이야기 하듯이 왕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바로 화왕계'이다.

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쓸쓸한 표정을 짓고 말하기를

그대의 우언에는 참으로 깊은 뜻이 있으니 청컨대 이를 써두어 임금 된 자를 경계하는 말로 삼으리라." 하고 설총에게 높은 벼슬을 주었다.

 

󰏐 작품의 이해와 감상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설화로, 신라 신문왕 때의 설총(薛聰)이 한문으로 지은 우언적(寓言的)인 단편 산문이다. 어느 날 무슨 신기한 이야기를 하라는 신문왕의 명을 받고 들려 준 이야기라고 하는데, 꽃을 의인화하여 임금을 충고한 풍자적인 내용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적인 기록이며, 후대의 가전체 소설은 이 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한 에피소드로, 왕에게 신하를 가려 뽑는 슬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어진 임금 밑에는 어진 신하가 모이고 폭군 밑에는 간신들이 모인다는 역사적 교훈을 꽃에 비겨서 상기시키는 이 작품은 반드시 왕이나 지체 높은 사람에게만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평범한 속담과도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교훈은 군주와 신하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교우관계, 사제 관계 등 모든 인간 관계에 적용되는 것이며,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의 갈등, 가치 판단, 도덕적 책임에도 관련된다. 특히 작품의 전개에서 왕의 심리에 갈등을 도입하여 위기를 설정하는 장면은 뛰어나다.

 

▶《동문선52에는 <풍왕서(諷王書)>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원래는 삼국사기열전에 설총을 다루면서 제목 없이 언급된 것을 후대 사람들이 <화왕계>라 부른 것이다 이야기의 발단은 신문왕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설총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 것을 청하는 대목에서 시작된다. 그 내용은 꽃나라를 다스리는 화왕이 처음에는 자신을 뵙고자 찾아온 많은 꽃 중에서 장미를 사랑하였다가 뒤이어 나타난 할미꽃의 충직한 모습에 심적인 갈등을 일으키게 되지만, 결국 할미꽃의 간곡한 충언에 감동하여 정직한 도리를 숭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신문왕은 설총의 우언이 매우 뜻이 깊다 하고 후세의 임금들이 경계하도록 글로 쓰게 하였다. 여기서 할미꽃은 설총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대신하여 주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우언인 것이다.

모란인 화왕은 아름답게 꾸미기만을 좋아하고 어리석어 사리분별도 할 줄 모르는 부정적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장미꽃과 같이 아양떠는 간신들의 말에만 귀 기울이면서 그들을 가까이하고, 할미꽃처럼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멀리하는 추악한 봉건군주의 형상인 것이다. 장미꽃은 봉건군주에게 아첨하여 권세를 누려 부패한 생활에 젖은 간신의 형상이다. 작가는 장미꽃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교태와 외형상 아름다움을 내세워 임금에게 아첨하는 간신을 비판하였다. 할미꽃은 자진하여 화왕을 찾아와서 자기를 등용해 주기를 청하는 청렴한 인물을 나타낸다. 우언을 통하여 완곡하게 바른 도리로써 정치를 해야 함을 주장하고 부귀에 안주하고 요망한 무리들을 가까이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꽃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일 뿐 아니라, 문학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다. 꽃을 의인화하여 인간세계를 빗대어 놓은 이 작품은 문학적 표현방식의 새로운 영역을 보여 줌으로써, 고려 중기에 나타나는 가전체 문학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고, 또한 조선 중기에 보인 <화사(花史)>와 같은 작품의 선구적 형태가 되었다.

 

󰏐 본문 이해

 

                                                                           화왕계(花王戒)

                                                                                                                                                                   설총


화왕(꽃중의 왕이라 하여 모란을 이르는 말)께서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향기로운 동산에 심고, 푸른 휘장으로 둘러싸 보호하였는데, 삼춘가절(三春佳節)을 맞아 예쁜 꽃을 피우니, 온갖 다른 꽃보다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여러 가지 꽃들이 다투어 화왕을 뵈오러 왔다. 깊고 그윽한 골짜기의 맑은 정기를 타고난 탐스러운 꽃들과 양지바른 동산에서 싱그러운 향기를 내며 피어난 꽃들이 앞을 다투어 모여 왔다.
문득 한 가인(佳人)이 앞으로 나왔다. 붉은 얼굴에 옥 같은 이(朱顔玉齒:아름다운 여자의 얼굴과 고운 이를 가리킬 때 쓰는 말)와 신선하고 탐스러운 감색 나들이 옷을 입고 아장거리는 무희처럼 얌전하게 화왕에게 아뢰었다.
“이 몸은 白雪의 모래사장을 밟고,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바라보며 자라났습니다. 봄비가 내릴 때는 목욕하여 몸의 먼지를 씻었고, 상쾌하고 맑은 바람 속에 유유자적(悠悠自適:속세를 떠나 아무것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조용히 편안히 생활하는 일)하며 지냈습니다.(세파에 물들지 않고 곱게 자랐음) 이름은 장미라 하옵니다. 임금의 높으신 덕을 듣고 꽃다운 침소에 그윽한 향기를 더하여 모시고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이 몸을 받아 주실런지요?”
이때, 베옷[野人]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르고, 손에는 지팡이(연륜 상징), 머리는 백발(원숙한 경지)을 한 장부 하나가 둔중한 걸음으로(무게 있는 인품. 검소한 옷차림과 세상사를 많이 겪은 이력이 드러남) 나와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이 몸은 서울 밖 한길 옆에 사는 백두옹(白頭翁:할미꽃)입니다. 아래로는 창망한 들판을 내려다보고, 위로는 우뚝 솟은 산 경치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옵건대, 좌우에서 보살피는 신하는 고량(膏粱-膏粱珍味의 준말:기름지고 살진 고기와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차와 술로 수라상을 받들어 임금님의 식성을 흡족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해드리고 있습니다. 또, 고리짝에 저장해 둔 양약(良藥)으로 임금님의 양기를 돕고, 금석(金石)의 극약(劇藥)으로써 임금님의 몸에 있는 독을 제거해 줄 것입니다.(임금의 실정을 지적하는 신하의 충간(忠諫)) 그래서, 이르기를 ‘군자된 자는 비록 사마(絲麻:명주실과 삼실))가 있다고 해서 관괴(管蒯:띠(茅)의 일종. 관과 괴 둘 다 사초과에 속하는 풀로 관은 도롱이와 삿갓을, 괴는 돗자리를 짜는 원료)를 버리는 일이 없고, 부족에 대비하지 않음이 없다.’(좌전의 雖有絲麻(수유사마) 無棄管蒯(무기관괴)에서 인용한 말로 최선의 것이 있어도 차선의 것을 버리지 않고 유사시에 대비함을 의미. 有備無患(유비무환)의 정신. 궁극적 의도: 잘못을 진언하는 어진 신하도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임금님께서도 이러한 뜻을 가지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
한 신하가 아뢰되,
“두 사람이 왔는데 임금님께서는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리겠습니까?”
“장부의 말도 도리가 있기는 하나, 그러나 가인을 얻기 어려우니 이를 어찌할꼬?”
장부가 앞으로 나와,
“제가 온 것은 임금님의 총명이 모든 사리를 잘 판단한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뵈오니 그렇지 않으십니다. 무릇, 임금된 자로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지 않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는 이는 드뭅니다.(鮮不親近邪佞(선불친근사녕) 疎遠正直(소원정직)) 그래서, 맹자는 불우한 가운데 일생을 마쳤고, 풍당(한나라 안릉 사람 어진 인재였으나 벼슬이 낭관에 그침)은 낭관으로 파묻혀 머리가 백발이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이러하오니 저인들 어찌하겠습니까?”(임금이 어진 신하를 몰라 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라고 말씀 드렸다. 화왕께서는 마침내,
“내가 잘 못 했다. 잘못했다.”(화왕이 외관에 눈이 어두워 본질을 보지 못한 잘못, 즉 옳은 말을 하는 충신을 몰라 본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말)고 되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