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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전(孔方傳)
‘공방전’의 주제적 의미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삶에서 돈이 요구되어 만들어져 쓰이지만 그 때문에 생긴 인간의 타락상을 역사적으로 살피고 있다. 작자가 사신의 말을 빌어 작품의 말미에서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고 이익을 좇는 자를 어찌 충이라 이를 것인가. 공방이 법을 만나고 주인을 만나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았으나 응당 이익을 일으키고 해가 됨을 덜어 그 은덕에 보답해야 할 것이거늘, 권세를 도맡아 부리고 사사로운 당을 만들었으나 충신은 경외(境外)의 사귐이 없다는 것에 어그러진 자이다.’라고 한 내용은 그러한 사실을 압축하여 제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공방의 존재가 삶의 문제를 그릇되게 하므로 후환을 막으려면 그를 없애야 한다고 하였다. 난세를 만나 참담한 가난 속에 지내다 일찍 죽고 만 임춘의, 돈의 폐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작품의 이해와 감상
▶ 이 작품은 엽전(돈)을 의인화하여 '돈의 폐해'를 비판하려 한 가전체 소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공방'-둥근 모양에서 '공(孔)'이라 하고, 구멍의 모난 모양에서 ‘방(方)'이라 함. -은 욕심이 많고 염치가 없는 부정적 성격의 소유자로 백성들로 하여금 오직 이익을 좇는 일에만 종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는, 일반 선비들과 달리 천하게 여겼던 시정의 사람들과도 사귀기도 하는데, 이는 ‘공방'이 단순하게 ‘돈'을 드러낸다든가 탐욕스러운 한 전형적 인간을 내세운다기보다는 잘못된 사회성을 비판하기 위한 작자의 의도가 반영된 작품을 통하여 돈의 내력과 성쇠를 보여줌으로써 사회상을 풍자하는 경세(經世)의 효과를 나타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 이 작품은 서사 양식으로서의 ‘전(傳)’의 특성과 우회적인 요건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돈을 의인화시켜서 인간적인 품격을 부여하는 방식은 일종의 우의적인 표현법에 해당된다. 돈의 속성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과 각성을 의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의 사실성과 우화의 윤리성을 결합시킨 것이 바로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공방’ - 둥근 모양에서 ‘공(孔)’이라 하고, 구멍의 모난 모양에서 ‘방(方)’이라 함 - 은 욕심이 많고 염치가 없는 부정적 성격의 소유자로 백성들로 하여금 오직 이익을 좇는 일에만 종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는, 일반 선비들과 달리 천하게 여겼던 시정의 사람들과도 사귀기도 하는데, 이는 ‘공방’이 단순하게 ‘돈’을 드러낸다든가 탐욕스러운 한 전형적 인간을 내세운다기보다는 잘못된 사회상을 비판하기 위한 작자의 의도가 반영된 사물로 여겨질 수 있음을 뜻한다. 즉, 작자는 이 작품을 통하여 돈의 내력과 성쇠를 보여 줌으로써 사회상을 풍자하는 경세(警世)의 효과를 나타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돈이 요구되지만 돈 때문에 인류는 간사해지고 말썽이 생긴다. 따라서 돈이 두통거리이니 후환을 막으려면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의도가 드러나 있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하여 돈의 용도가 바르게 되어야 함을 강조한 경제관념을 엿볼 수 있다.
▶ 고려 무신 집정 때의 문인 임춘이 돈을 의인화하여 지은 가전체 작품으로, 돈이 생겨나게 된 유래와 돈이 인간 생활에 미치는 각종 이득과 폐해를 사람의 행동으로 바꾸어 보여 줌으로써, 사람들이 재물을 탐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지은이 임춘은, 공방의 존재가 삶의 문제를 그릇되게 하므로 후환을 없애려면 그를 없애야 한다고 결론지음으로써, 돈의 폐해에 대해 비관적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임춘은 ‘공방전’에서 돈이 벼슬하는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자기와 같은 불우한 처지에서는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세태를 비판하고, 벼슬을 해서 나라를 망치는 무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이라고 하겠다.
임춘은 무신란을 만나 겨우 목숨은 보전하였으나, 극도로 빈한한 처지에서 불우한 일생을 마친 구 귀족의 후예였다. 몰락을 겪고 구차하게 살아가면서, 화려한 공상이나 관념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구체적인 사물과의 일상적인 관계를 통해서 자기의 처지를 나타내는 방법을 택했다. 그의 ‘국순전’이 술을, ‘공방전’이 돈을 의인화한 것이라는 것은 그의 삶을 염두에 두면 그리 우연만은 아니다. 현실에 대한 그의 불만(관료들의 부정, 부패)은 자기 주위의 접하기 쉬운 생활에서부터 비롯될 수 있는 것이었다.
직접적인 서술이 아닌 의인화로서 풍자적인 교훈성을 지닌 ‘공방전’은, 형식적인 면에서 소설 정착의 전단계(前段階)이며, 내용적인 면에서 계세징인(戒世懲人)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
▶ 돈을 의인화하여, 돈의 용도가 올발라야함을 역설적으로 가르친 작품이다. 공방은 엽전의 둥근 모양에서 孔, 구멍의 네모난 모양에서 方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돈이 가진 이중성에 대한 평가가 우의적으로 드러나 있다. 즉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이 돈이 결국 인간을 타락시키는 결과를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바탕으로 돈의 폐해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임춘은 돈의 생김새부터 마땅치 않게 여겼다. 속이 편협하게 모가 나 있다고 하거나, 욕심이 많고 더럽고 염치없는 인물이며, 농사에 방해를 끼치고, 권세를 이용하여 관직을 매매하여 나라를 곤란하게 만들어 당대의 질서를 해친다고 써 놓았다.
그런데 고려 시대에는 아직 엽전이 크게 보급되지 않았다. 대개 공방전에서 보이는 ‘화폐'에 대한 임춘의 부정적인 입장은 중국 화폐 역사의 폐해를 근거로 형성된 것이다. 작가 임춘은 우리나라에 공방이 성하기도 전에 중국의 사례를 놓고 경계의 화살을 보낸 것이다.
▶ 이 작품은 엽전(돈)을 의인화하여 '돈의 폐해'를 비판하려 한 가전체 소설로 돈의 내력과 성쇠를 보여줌으로써 사회상을 풍자하고 경세 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공방'은 엽전의 둥근 모양에서 '공'을, 구멍의 모난 모양에서 '방'을 붙인 이름이다. 사물의 역사와 본성을 사회상에 빗대어 표현 비판한 작품이다.
작가 임춘은 무신란에서 피해를 입은 구귀족의 잔존 세력이었다. 그는 가난하게 살면서 관념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구체적인 사물과의 일상적인 관계를 통해서 자기의 처지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가전을 택했다. 술과 돈은 그에게 중요했으나 그에게는 그 어느 것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런 관심이 '국순전'이나 이 작품 '공방전'에 나타났을 것이다. 결국 공방의 존재가 삶의 문제를 그릇되게 하므로 후환을 막으려면 공방을 없애야 한다는 그의 인식은 참담한 가난 속에 지내다 일찍 죽고만 임춘의 돈의 폐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표출일 것이다.
연구 문제
1. '공방전'에 반영된 현실 인식을 살펴보자.
▶ 사람이 살아 가면서 돈이 요구되지만 돈 때문에 인류는 간사해지고 말썽이 생긴다. 따라서, 돈이 두통거리이니 후환을 막으려면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의도가 드러나 있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돈의 용도가 바르게 되어야 함을 강조한 경제관념을 엿볼 수 있다.
2. 이 작품에서 공방의 성품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자.
▶ 이 작품은 재물을 탐하는 것을 경계하는 '돈'을 의인화한 작품이다. 따라서 탐욕적인 공방의 성품이 드러나 있다.
3. 이작품에 드러난 작자의 태도를 살펴보자.
▶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거나 떳떳한 존재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작자의 태도가 돈의 조상이 굴 속에 숨어 살았다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4.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드러내고 있는 현실은?
▶ ① 돈의 폐해 부각 - 돈의 본질은 겉은 원만해 보이나 속은 편협하다. 그리고 임기응변을 잘한다. 그래서 방은 조정에 중용이 되지만, 결국 나라를 곤궁하게 만들고 만다.
② 타락한 관료 비판 - 돈이 당대의 질서를 해치며, 당시 벼슬아치들의 윤리적 타락까지 지적함
③ 관념적 작가의식 - 돈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나 그 근거를 중국의 화폐 역사에서 찾고 있다. 결국 '공방전'은 현실적 경험의 독창적 표현이 아니라, 관념적 수준에 머물고 만 것이다.
5. 판소리 '흥부가'에서 흥부가 돈을 바라보는 관점과 공방전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관점은?
얼씨고나 좋을씨고, 얼씨고나 좋을씨고, 얼씨고 절씨고 지화자 좋구나, 얼씨고 좋을씨고, 돈 봐라, 돈 봐라, 얼씨고나 돈 봐라. 잘난 사람은 더 잘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 공명이 붙은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느냐? 얼씨고나 돈 봐라. 야, 이 자식들아, 춤춰라. 어따, 이놈들, 춤을 추어라. 이런 경사가 어디 있느냐? 얼씨고나 좋을씨고, 둘쨋놈아 말 듣거라. 건넌말 건너가서 너그 백부님을 오시래라. 경사를 보아도 형제 볼란다. 얼씨고나 좋을씨고, 지화자 좋을씨고. 불쌍허고 가련한 사람들. 박흥보를 찾어어오. 나도 내일부터 기민을 줄란다. 얼씨고나 좋을씨고. 여보시오 부자들, 부자라고 좌세말고 가난타고 한을 마소. 엊그저께까지 박흥보가 문전 걸식을 일삼더니, 오늘날 부자가 되니, 석숭이를 부러허며 도주공을 내가 부러워헐그냐? 얼씨고 좋을씨고, 얼씨고나 좋구나. |
▶ 흥부도 '공방전'에서의 '공'처럼 돈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잘난 사람은 더 잘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이라는 대목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공방전'에서의 돈은 사람을 탐욕스럽게 하고 교만스럽게 하는 부정적인 요소의 돈이지만, '흥부가'에서의 '돈'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긍정적인 요소의 돈으로 보고 있다. 즉, '공방전'에서는 돈을 탐욕의 대상으로 보지만, 흥부가에서는 가난 구제의 수단으로 돈을 바라보고 있어서 공방전은 돈을 부정적으로, 흥부가는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본문읽기
공방(孔方)의 자(字)는 관지(貫之)다. 공방이란 구멍이 모가 나게 뚫린 돈, 관지는 돈의 꿰미를 뜻한다. 그의 조상은 일찍이 수양산 속에 숨어 살면서 아직 한 번도 세상에 나와서 쓰인 일이 없었다.
그는 처음 황제(黃帝) 시절에 조금 조정에 쓰였으나 워낙 성질이 굳세어 원래 세상일에는 그다지 세련되지 못했다. 어느 날 황제가 상공(相工)을 불러 그를 보았다. 상공은 한참 들여다보고 나서 말한다.
“이는 산야(山野)의 성질을 가져서 쓸 만한 것이 못 됩니다. 그러하오나 폐하께서 만일 만물을 조화하는 풀무나 망치를 써서 그때를 긁어 빛이 나게 한다면, 그 본래의 바탕이 차차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원래 왕자(王者)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올바른 그릇이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 사람을 저 쓸모없는 완고한 구리쇠와 함께 내버리지 마시옵소서.” 이리하여 공방은 차츰 그 이름이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뒤에 일시 난리를 피하여 강가에 있는 숯 굽는 거리로 옮겨져서 거기에서 오래 살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 천(泉)은 주나라의 대재(大宰)로서 나라의 세금에 관한 일을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천(泉)이란 화천(貨泉)을 말한다.
공방은 생김새가 밖은 둥글고 구멍은 모나게 뚫렸다. 그는 때에 따라서 변통을 잘한다.. 한 번은 한나라에 벼슬하여 홍려경(鴻臚卿)이 되었다. 그때 오왕(吳王) 비(妃)가 교만하고 참람(僭濫)하여 나라의 권리를 혼자서 도맡아 부렸다. 방은 여기에 붙어서 많은 이익을 보았다. 무제 때에는 온 천하의 경제가 말이 아니었다. 나라 안의 창고가 온통 비어 있었다. 임금은 이를 보고 몹시 걱정했다. 방을 불러 벼슬을 시키고 부민후(富民侯)로 삼아, 그의 무리인 염철승(鹽鐵丞) 근(僅)과 함께 조정에 있게 했다. 이때 근은 방을 보고 항상 형이라 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방은 성질이 욕심이 많고 비루(卑陋)하고 염치가 없었다. 그런 사람이 이제 재물을 맡아서 처리하게 되었다. 그는 돈의 본전과 이자의 경중을 다는 법을 좋아하여,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질그릇이나 쇠그릇을 만드는 생산 방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백성으로 더불어 한 푼 한 리의 이익이라도 다투고, 한편 모든 물건의 값을 낮추어 곡식을 몹시 천한 존재로 만들고 딴 재물을 중하게 만들어서, 백성들이 자기들의 본업인 농업을 버리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맨 끝인 장사에 종사하게 하여 농사짓는 것을 방해했다.
이것을 보고 간관(諫官)들이 상소를 하여 이것이 잘못이라고 간했다. 하지만 임금은 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방은 또 권세 있고 귀한 사람을 몹시 재치 있게 잘 섬겼다. 그들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자기도 권세를 부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을 등에 업고 벼슬을 팔아, 승진시키고 갈아치우는 것마저도 모두 방의 손에 매이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한다 하는 공경(公卿)들까지도 모두들 절개를 굽혀 섬기게 되었다. 그는 창고에 곡식이 쌓이고 뇌물을 수없이 받아서 뇌물의 목록을 적은 문서와 증서가 산처럼 쌓여 그 수를 셀 수 없이 되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상대하는 데 잘나거나 못난 것을 관계하지 않는다. 아무리 시정 속에 있는 사람이라도 재물만 많이 가졌다면 모두 함께 사귀어 상통한다. 때로는 거리에 돌아다니는 나쁜 소년들과도 어울려 바둑도 두고 투전도 한다. 이렇게 남과 사귀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을 보고 당시 사람들은 말했다.
“공방의 한 마디 말이 황금 백 근만 못하지 않다.”
원제(元帝)가 왕위에 올랐다. 공우(貢禹)가 글을 올려 말한다.
“공방이 어려운 직책을 오랫동안 맡아보는 사이, 그는 농사가 국가의 근본임을 알지 못하고, 오직 장사꾼들의 이익만을 두호(斗護)해 주어서,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쳐서 국가나 민간 할 것 없이 모두 곤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위에 뇌물이 성행하고 청탁하는 일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대체로 ‘짐을 지고 또 타게 되면 도둑이 온다[負且乘 致寇至].’ 한 것은 ‘주역’에 있는 분명한 경계입니다. 청컨대 그를 파면시켜서, 모든 욕심 많고 비루한 자들을 징계하시옵소서.”
그때 정권을 잡은 자 중에는 곡량(穀梁)의 학문을 쌓아 정계에 진출한 자가 있었다. 그는 군자(軍資)를 맡은 장군으로 변방을 막는 방책을 세우려 했다. 이에 방이 하는 일을 미워하는 자들이 그를 위해서 조언했다. 임금은 이들의 말을 들어서 마침내 방은 조정에서 쫓겨나는 몸이 되었다.
그는 자기 문인들에게 말했다.
“내가 전일에 폐하를 만나 뵙고, 나 혼자서 온 천하의 정치를 도맡아 보았었다. 그리하여 장차 국가의 경제가 넉넉하고 백성들의 재물이 풍족하게 되게 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제 까닭 없는 죄로 내쫓기고 말았구나. 하지만, 나가서 조정에 쓰이게 되거나 쫓겨나 버림을 받는 것이 내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손해 될 것이 없다. 다행히 나의 이 목숨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 아주 끊어지지 않고 이렇게 주머니 속에 감추어져 아무 말도 없이 용납되고 있다. 이제 나는 부평과 같은 행색으로 곧장 강회(江淮)에 있는 별장으로 돌아가련다. 약야계(若冶溪) 위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를 낚아 술을 마시며, 때로는 바다 위의 장사꾼들과 함께 배를 타고 떠돌면서 남은 인생을 마치련다. 제 아무리 천 종의 녹이나 다섯 솥의 많은 음식인들 내 어찌 조금이나 부러워해서 이것과 바꾸겠느냐. 하지만 내 심술이 오래되면 다시 발작할 것만 같다.”
진(晋)나라에 화교(和嶠)란 사람이 있었다. 공방의 풍도를 듣고 기뻐하여 사귀어 여러 만 냥의 재산을 모았다. 이로부터 화교는 공방을 몹시 좋아하는 한 가지 버릇을 이루고 말았다. 이것을 본 노포(魯褒)는 논(論)을 지어 화교를 비난하고, 그릇된 풍속을 바로잡기에 애썼다.
화교의 무리 중에서 오직 완적(阮籍)만은 성품이 활달해서 속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방의 무리와 어울려 술집에 다니면서 취하도록 마시곤 했다. 왕이보(王夷甫)는 한 번도 입으로 방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없었다. 방을 가리켜 말하려면 그저 ‘그것’이라고 했다. 맑은 의논을 하는 사람들에게 방은 이렇게 천대를 받았다.
당(唐)나라 세상이 되었다. 유안(劉晏)이 탁지판관(度支判官)이 되었다. 재산을 관리하는 벼슬이다. 당시 국가의 재산이 넉넉지 못했다. 그는 다시 임금께 아뢰어 방을 이용해서 국가의 재용(財用)을 여유 있게 하려고 했다. 그가 임금에게 아뢴 말은 식화지(食貨志)에 실려 있다.
그러나 그때 방은 죽은 지 이미 오래였다. 다만 그의 제자들이 사방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이들을 국가에서 불러서 방 대신으로 쓰게 되었다. 이리하여 방의 술책이 개원(開元)․천보(天寶) 사이에 크게 쓰였고,, 심지어는 국가에서 조서를 내려 방에게 조의대부소부승(朝議大夫少府丞)을 추증하기까지 하였다.
남송 신종조(神宗朝) 때에는 왕안석(王安石)이 정사를 맡아 다스렸다. 이때 여혜경(呂惠卿)도 불러서 함께 일을 돕게 했다. 이들이 청묘법(靑苗法)을 처음 썼는데, 이 때 온 천하가 시끄러워 아주 못 살게 되었다.
소식(蘇軾)이 이것을 보고 그 폐단을 혹독하게 비난하여 그들을 모조리 배척하려 했다. 그러나 소식도 도리어 그들의 모함에 빠져서 쫓겨나 자신이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로부터 조정의 모든 선비들은 그들을 감히 비난하지 못하였다.
사마광이 정승으로 들어가자 그 법을 폐지하자고 아뢰고, 소식을 천거하여 높은 자리에 썼다. 이로부터 방(方)의 무리는 차츰 세력이 꺾이어 다시 강성하지 못했다.
<중략>
사신(史臣)은 말한다.
남의 신하가 된 몸으로서 두 마음을 품고 큰 이익만을 좇는 자를 어찌 충성된 사람이라고 하랴. 방이 올바른 법과 좋은 주인을 만나서, 정신을 집중시켜 자기를 알아주어서 나라의 은혜를 적지 않게 입었었다. 그러면 의당 국가를 위하여 이익을 일으켜 주고, 해를 덜어 주어서 임금의 은혜로운 대우에 보답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도리어 비를 도와서 나라의 권세를 한 몸에 독차지해 가지고, 심지어 사사로이 당을 만들기까지 했으니, 이것은 충신이 경계 밖의 사귐이 없어야 한다는 말에 어긋나는 것이다.
방이 죽자 그 남은 무리들은 다시 남송에 쓰였다.. 집정한 권신(權臣)들에게 붙어서 그들은 도리어 정당한 사람을 모함하는 것이었다. 비록 길고 짧은 이치는 저 명명(冥冥)한 가운데 있는 것이지만, 만일 원제(元帝)가 일찍부터 공우(貢禹)가 한 말을 받아들여서 이들을 일조에 모두 없애 버렸던들 이 같은 후환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만 이들을 억제하기만 해서 마침내 후세에 폐단을 남기고 말았다. 그러나 대체 실행보다 말이 앞서는 자는 언제나 미덥지 못한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하선생집(西河先生集)>
어휘 풀이
* 관지(貫之): 꿴다는 뜻으로, 돈을 꿰미로 만들기 때문에 자(字)를 관지라 하였음
* 굴혈(掘穴): 굴 속
* 부세(賦稅): 세금을 매겨서 부과하는 것
* 홍려경(鴻臚卿): 한나라의 관직 이름. 외국의 빈객(賓客)을 접대하는 관직 이름
* 분리(分厘): 돈과 저울과 자 따위의 단위인 분(分)과 이(厘)
* 근본(根本): 여기서는 ‘농업’을 일컬음
* 끝: 여기서는 ‘상업’을 일컬음
* 간관(諫官): 조선시대에 사간원 · 사헌부의 벼슬아치를 통틀어 이르는 말
* 권귀(權貴): 벼슬이 높고 권세가 있는 사람
* 문권(文券): 땅과 집 등의 소유권이나 그 밖의 어떤 권리를 증명하는 문서
* 불초(不肖): 원래는 아버지를 닮지 못한 못난 놈이란 뜻. 못나고 어리석음
* 연낙(然諾): 쾌히 허락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