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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올바른 이해와 시 읽기의 방법 논의

도추 정박사 2023. 6. 19. 04:15

 

♠. 김소월
<진달내ᄭᅩᆺ(民謠詩)>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ᄯᅢ에는 말업시
고히고히 보내들이우리다.


寧邊藥山
그 진달내ᄭᅩᆺ을
한아름 ᄯᅡ다 가실길에 ᄲᅮ리우리다.


가시는길 발거름마다
ᄲᅮ려노흔 그 ᄭᅩᆺ을
고히나 즈러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ᄯᅢ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흘니우리다.
(開闢 1922. 7)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형태와 율격

한국 시가(詩歌)의 한 음보는 2음절에서 6음절 사이인데 최빈수는 4음절이다. 한국의 시가는 3음보격 내지 4음보격이다. 그런데 3음보격이 되면 경쾌한 반면 안정감이 결여되며, 4음보격은 안정감이 있고 대구의 역할도 할 수 있다. <진달래꽃>3음보격의 작품이다.

이 시는 자유시로서 내재율에 의거하고 있으나, 행과 연의 배열에 있어서는 정형성을 보인다. 3음보격의 민요조의 리듬으로서 운율 전개를 각 연마다 규칙적으로 배열한다.

위와 같이 배열함으로써, 정서적으로 동()과 정(), 급박(急迫)의 리듬 변화가 형성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시의 각 연은 ……오리다라는 종결 어미를 반복하는 동시에, 13행과 43행 사이에 변조(變調)를 보임으로써 시의 음악성을 효과적으로 살리고 있다.

 

<산유화(山有花)>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산유화(山有花)>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⑵⑴⑵⑴








⑴⑴⑴⑶








⑶⑴⑴⑴






⑵⑴⑵⑴

율격

3음보 율격이지만 그것을 기계적으로 배열하지 않고 사상의 전개에 따라 각 시행에 적절하게 배분함으로써 단조로움을 피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율격 질서가 시 전체의 의미 구조를 강화하는 데 이바지하도록 만들고 있다.

 

꽃의 이미지

꽃은 모든 시인이 적어도 한 번쯤은 탐미하고 노래하여 보았을 소재이다. 그러나 같은 꽃이라도 시인의 태도와 해석의 방향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꽃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매개체로서, 자연의 일부인 사물의 대유(代喩)로써 표현되고 있다. 존재론적 입장에서 사물의 내면적 의미 탐구의 대상으로 변용(變容)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김광균의 <외인촌>를 예로 들 수 있다.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취 위엔/한낮의 소녀(少女)들이 남기고 간/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와 후자의 경우 김춘수의 <>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처럼 의미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꽃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인식에서 빚어지는 의 개성적 의미는 소월 자신의 시에서도 극명(克明)하게 나타난다. <진달래꽃>이 이별의 정한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가운데서 꽃은 헌신적 사랑의 이미지로 나타나는가 하면 <산유화>에서는 외로운 감정을 직접적인 묘사의 방법으로 노래함으로써 은 자연 그 자체, 나아가 존재의 객관적 상관물로서의 의미를 띠게 된다. <산유화>는 고독하고도 순수한 삶의 모습을 산에 피어 있는 꽃에 비유하여 인간의 근원적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시의 가치는 이러한 방법론의 특이함을 염두에 두고 고찰되어야 한다.

이 시는 삶의 의미 전체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일생의 시작과 끝을 양극으로 묶으면서 전 역정의 의미를 단계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시의 해석의 방향을 좌우하는 중심 소재의 상징적 내용 규명이 중요하다. 김동리는 산과 꽃과 새를 자연으로 보고 시적 화자로 대표되는 인간이 자연에 접근하지 못하고 거리(저만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 비애 즉 한()을 읊은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면 산은 인간의 삶의 공간이며 꽃과 새는 인간을 상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시적 화자는 인생의 의미를 삼인칭 시점으로 서술할 뿐인 것이다. 이러한 전제적 시각 아래서 볼 때 1연의 의미는 이 세상에 막연히 태어난 상태 즉 무의미하게 피투(被投)된 상태, 현상학에서는 중성자(中性者)로 전락해 있는 일상인(日常人)이 된다. 불교 철학에서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세간(世間)의 범부(凡夫)에 해당된다. 2연은 실존적(實存的) 고독을 자각하는 상태나 본래적인 자기 존재를 근원적으로 이해하고 본래적인 자기로서 존재할 것을 결단하는 말하자면 현존재가 본래적인 자기에로 자기 자신을 내어 던지는<기투(企投)> 준비를 하는 단계다. 불교에서는 진리를 깨닫는 자각의 나한(羅漢)에 이르는 상태다. 3연에서 꽃과 새가 어울림은 실존적 자각이 현재재(現在在)의 본래성을 나타내는 현성(現成)의 단계에 해당된다. 불교 철학은 이 시의 제 삼단계의 의미를 극명하게 설명해 줄 수 있다. , 개인적 자각인 나한의 경지에서 사회적 자각인 보살(菩薩)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중생을 제도하는 사회적인 삶의 기쁨은 인생의 의미의 절정이며 전부다. 4연은 단순한 인생의 종말 즉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큰 의미를 성취하고 난 다음에 오는 만족의 미소다. 이 미소가 문자 그대로 죽음 앞에선 미소라도 좋다. 그것은 종식이 아니고 초월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사유적 단계로 보아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다시 관심에서 초월로 이어지는 철학적 의미 구조를 볼 수도 있다.

<后 日>


後日당신이차즈시면 그ᄯᅢ에내말이 니젓노라.
당신말에나물어하시면 무쳑그리다가 니젓노라.
그래도그냥나물어하면 밋기지안아서니젓노라.
오늘도어제도못닛는당신 먼后日 그ᄯᅢ엔 니젓노라.
<먼 훗날>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시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시면
믿어지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초혼(招魂)>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虛空)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대일 땅이 있었다면> 참고.

♠. 한 용 운
<님의 침묵(沈黙)>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이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黙)을 휩싸고 돕니다.

작품의 감상

이 시는 조국의 상실한 시대에, 잃어버린 임에 대한 그리움을 연가풍(戀歌風)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그러나 단순한 연가는 아니다. 그의 임은 잃어버린 조국이나 불교와 관련한 초월적(超越的)인 절대적 존재에 해당한다. 아니, 그 둘이 일체가 된 것이다.

이 시의 시상 전개는 임의 부재 현상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적 괴로움을 노래하고 있으면서도 슬픔과 허무가 희망과 의지로 승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절대적임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확인하는 주제를 향하고 있어서 의미의 율격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시의 구조는 역설(逆說)의 구조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다고 하여 삶에 있어서 헤어짐과 만남은 하나라는 역설적 진리를 담고 있다. 불교적인 비유와 고도의 상징적 수법 등은 이 시를 서정적이면서도 그 속에 담긴 깊은 사상성과 저항성, 민족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짙게 나타내고 있다.

 

반어와 역설

반어(反語) irony는 그리스 희극의 한 주인공인 에이론 Eiron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에이론은 자기 과시적인 인물인 알라존 Alazon과 반대로 자신을 은폐하는 자이다. , 의도적으로 자신의 실상을 숨기고 보다 어리석은 체하는 것이다. 이 에이론이 종말에 가서는 알라존을 이긴다. 이 에이론처럼 실상 또는 진실을 안으로 숨기는 수사법이 곧 반어이다. 반어의 어원(語源)인 에이로네이아 eironeia은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반어는 에이론처럼, 의도적으로 실상 또는 진실을 숨기고 표면적으로는 다르게 말하는 수사법이다. 흔히, 우리는 잘못한 사람에게 반대로 잘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가 바로 반어이다.

이와 달리 역설(逆說) paradoxpara(넘어서)+dox(진술)이란 어원을 갖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 표면적인 진술 너머에서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 수사법이다. 이와 같이, 표현된 것과 은폐하고 있는 표현의 구조가 반어와 유사하므로, 역설을 반어의 한 종류로 보기도 한다.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波紋)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최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 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작품의 감상

이 시는 존재의 진리를 향한 구도정신(求道情神)을 차분한 목소리로 읊은 구도적인 시이다. 진리를 향한 태도는 이렇듯 경건한 것이며, 알 듯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오묘한 존재의 실체란 영원히 우리 인간이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저만치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렇듯 손아귀에 잡 잡히지 않는 것이기에 진리를 향한 노력은 더욱 가열된 정열로 나타날 수 있으며, 이럴 때 인간 능력의 한계를 자각하는 우리의 모습은 더욱 비장하고 아름답다. 이 시가 주는 감동은 바로 적극적인 생의 자세를 보여 주는 데 있다. 여기서 알 수 없다고 한 대상은 단순히 자연 현상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순환하는 우주와 더불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던 자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 시의 끝 행은 순환하는 우주와 더불어 서로를 비추는 존재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표현상의 특징을 살펴보면 경어체를 사용하여 구도적 자세의 경건한 분위기를 제시해 주고 있으며 구절의 반복됨을 통하여 이미지의 구체화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누구’(절대자)과 같은 존재이며 이란 임이 사라진 시대, 즉 정의의 원리가 가리워진 식민지의 억압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용운 시의 만남의 미학

한용운 시의 만남의 성취는 일단 사랑의 신뢰에서 온다. 과거 한국의 전통 시가에서 볼 수 있는 일방적인 애소, 자탄, 원망, 체념이나 막연한 기다림 같은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가. 한에서 시작하여 한으로 끝나는 감정은 님과의 소통이 차단된 상태에서 오는 독백이기 때문에 결국 무기력에 빠져 시적 긴장이 감소되기 쉽다. 님의 의지를 자신의 심상 속에 긍정적으로 창조해 내지 못하거나, 회의를 동반할 경우 님과 나 사이의 거리는 메꾸어질 수가 없다. 한용운의 시는 이러한 전통적인 정서의 정체성을 극복한 셈이다. 그것은 님과 내가 다 같이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비밀과 침묵을 통한 만남의 일체화에 동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명상(冥想)>


아득한 명상(冥想)의 작은 배는 가이없이 출렁거리는 달빛의 물결에 표류되어 멀고 먼 별나라를 넘고 또 넘어서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이르렀습니다.
이 나라에는 어린아기의 미소와 봄아침과 바닷소리가 합하여 사랑이 되었습니다.
이 나라 사람은 옥쇄(玉璽)의 귀한 줄도 모르고, 황금을 밟고 다니고, 미인의 청춘을 사랑할 줄도 모릅니다.
이 나라 사람은 웃음을 좋아하고, 푸른하늘을 좋아합니다.


명상의 배를 이 나라의 궁전에 매었더니, 이 나라 사람들은 나의 손을 잡고 같이 살자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님이 오시면, 그의 가슴에 천국을 꾸미려고 돌아왔습니다.
달빛의 물결은 흰 구슬을 머리에 이고, 춤추는 어린풀의 장단을 맞추어 우쭐거립니다.
♠. 이 육 사
<광야(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梅花) 향기(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청포도>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작품의 감상

이 작품은 강한 남성적 어조를 바탕으로 한다. 5연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시간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로 진행된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삼세(三世)라고 하는데 이는 모든 시간을 의미하는 절대적 시간이다. ‘범하던 못하였으리라에서 공간 자체도 절대화되어 있는데 이는 서정적 자아에게 있어 각별한 시공간이다.

그러나 서정적 자아가 처해 있는 상황은 눈이 내리는 곳이다. ‘은 춥고 고통스러움을 상징한다. 그러나 척박한 현실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으려는 의지만은 매화 향기처럼 홀로 아득하다.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사적이고,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뿌려라라는 명령형 어미까지 사용하고 있다.

서정적 자아는 초인의 출현을 위해 씨가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는데 마지막 연에 오면 구체적으로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으로 설정된다. ‘광야는 비로소 우리 민족의 원형적 삶의 공간이 된 것이다. 이러한 원형적 공간의 추구는 <청포도>에서도 나타난다.

 

육사 시의 현대 시사적 의의

첫째, 1930년대 전반을 풍미하던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둘째, 고전적인 선비 의식과 한시(漢詩)의 영향으로 전통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셋째, 한국 시에 남성적이고 대륙적인 입김을 불어넣었다.

넷째, 죽음을 초월한 저항 정신과 시를 통한 진정한 참여를 보여 주었다. 특히 윤동주와 더불어 일제말 우리 민족 문학의 공백기를 메워 주는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절정(絶頂)>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작품의 감상

<절정>은 견디기 어려운 극한의 상황에서 오히려 그것을 넉넉한 관조의 정신으로 받아들이는 강인함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한시의 전통을 이어받아 당시에 풍미하던 서구 모더니즘이나, 낭만주의 경향이 아닌 동양적 시가 형태인 지사적인 기풍이 강하다.

4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성법을 취한 가운데 고도로 절제된 언어가 매서운 긴강감을 느끼게 한다. ‘북방은 수평적 공간의 극점이다. 그리고 고원은 수직적 공간의 극점인데 둘 다 한계 상황으로 설정된다. 3연은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할 지 모르는 상황 즉, 기도할 대상마저도 상실해 버린 막다른 벼랑이다. 4연에 이르면 눈감아 생각한다. 이는 이제까지의 시상과는 다르다. 독자는 이 부분에서 당황한다. 갑자기 여유스러워진 상황은 극적 전환에 해당한다. 그리고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고 노래한다. 이는 비극적 상황에 대한 초극을 드러내는 것이다. 겨울은 혹독한 현실인 데 반해 무지개는 희망적인 이미지이다. 결국 현실은 고통스럽지만 꿈을 갖고자 하는 서정적 자아의 불굴의 의지가 투영되어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의지적 인간 그것은 육사가 삶을 대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이 시는 그래서 가장 육사적인 작품이다.

 

육사의 시에 나타난 신념(信念)

육사의 시에 나타난 신념은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판단에 그 좌표 설정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자신의 저항 정신이 흔들리지 않기 위한 자기 암시에 그 좌표 설정이 되어 있다. 즉 자신의 행위가 절대적인 소명임을 스스로 암시하여 자신의 비극적 행위의 당위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고난의 시대는 물러가고 꼭 봄이 온다는 것, 어떤 고난이라도 우리의 의지를 흔들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위대한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임을 강한 어조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 신념은 현실적 가능성이나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혹은 날카로운 역사적 직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 당위성에 의거한 것이었다.

 

<교목(喬木)>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이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작품의 감상

교목은 우람하여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이다. 육사가 교목을 제재로 택한 이유는, 어떠한 외부적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자신을 강고하게 붙들어 두고자 해서이다.

하늘에 닿을 듯이라는 표현은 하늘이 드러내는 원형적 심상인 이상과 염원의 세계와 일치한다. 바로 이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신의 모습이다. 그러나 고통의 세월은 그를 시련에 들게 한다. 봄이라는 계절은 꽃이 생명인데 피지 말라고 한 것은 죽어도 압제에 굽히지 않겠다는 자신에 대한 준엄한 채찍이다.

그렇지만 시련의 길은 거미집을 휘두른괴로움이다. 그럴 때 인간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 번민에 젖는다. ‘설레임이 그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번민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니, 후회할 여유가 없다.

현실은 언제나 혹독하다. 어둠뿐이다. 그러나 의지가 꺾인다면 그것은 죽음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시련이나 유혹이 와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자신의 결의를 단호하고 영롱히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육사의 시어

육사는 강렬하고 역동적인 시어를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어느 면에서 보면 지적인 절제가 아쉬운 듯하지만, 그 실에 있어서는 강렬한 이미지 구성으로 시적 긴장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또한 강렬한 시어는 육사의 보다 저항적이고 대결적인 당당함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일제하에서 만해, 소월이 보여 주던 여성주의적 저항과는 또다른 각도에서 육사는 강렬한 대결의 자세로 남성적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정녕’, ‘차라리’, ‘마침내’, ‘’, ‘끝끝내’, ‘진정’, ‘아예등 극단적인 선택이나 결심을 결행하는 강한 부사어를 사용하고 있다. 부사가 용언을 꾸며 줌으로써 동작이나 상태를 결정짓는 역할을 수행함에 비추어 육사의 이러한 극단적인 부사어의 애용은 육사의 시가 보다 단도직입적이며 명쾌한 동태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진달래꽃><님의 침묵><광야>에 나타난 의 성격을 규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제시대 국민들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세 작가의 작품 중에 한 편을 선택하여 그 시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