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실존의 문제에 관한 논의
♠. 실존주의
▣ 근본 전제는 합리주의 철학(데카르트, 칸트, 헤겔사상)이 규정하는 인간에 대한 추상적 이론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실제로 존재하는 체험적 개인의 상황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개인의 구체적 실존은 합리적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것이므로 합리 이외의 다른 방식에 의한 질문과 해답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 실존주의적 사조를 띤 문인들에 의하면 사람의 실존은 기정의 이론, 신학, 사회, 과학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은 자기가 성취하는 바 그대로라는 것이다.
▣ 이처럼 자유롭게 자기의 실존을 성취하기 위한 행동을 <앙가주망>이라고 부른다. 인생은 한시도 쉴 수 없는 행동의 연속이어야 한다. 실존은 결국 앙가주망인 것이다.
▣ 한편 실존주의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한 세계 속에 인간이 실존한다고 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궁극적인 허무, 부조리를 안고 실존하는 것이 된다. 그러한 절대적 무의미와 허무를 받아들이면, 불안, 고뇌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실존의 무의미함에서 오는 고뇌, 불안이야말로 모든 실존주의적 문학의 공통요소가 된다.
▣ 실존주의는 <타락한> 세상에 자기를 내던져 포기하는 허무주의와는 달리,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오히려 완전한 허무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열렬히 스스로 선택한 또는 창조한 가치에 따라 성실히 행동할 것을 가르친다. 절대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을 완전히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실존을 주장한다는 자신감과 성실성에서 그 무의미에 반항하여 계속 행동하는 신화적 거인 시지프스는 그러한 실존주의자의 모습이다.
▣ 대부분의 실존주의적 경향의 문인들은 무신론적이지만, 키에르케고르의 전통을 이어받아 가브리엘 마르셀 등은 허무의 저 너머에서 만날 수 있는 궁극적인 존재, 즉 신을 인정하였다.
▣ 1940년대와 1950년대 초기에 누렸던 인기를 실존주의 문학은 계속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 실존주의 문학 작품
▣ ‘실존주의적’ 속성을 가진 모든 작품들은 그것이 누구에 의해서 언제 어디서 써진 것일지라도 다 같이 실존주의 문학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 문제가 뒤따른다.
① 논리적 문제-어떤 개념을 너무 확대해서 적용할 때 그 개념의 의미는 상대적으로 애매모호해 질 수밖에 없다.
② 실질적 문제-실존주의 문학을 가장 분명히 규정하고 이해하려면 가능한 적은 수의 가장 대표적 작품을 골라 그것의 특색을 도출해 내는 작업이 방법적으로 가장 효율적이다.
▣ 실존주의 작가를 대표하는 것은 아무래도 사르트르와 카뮈이며 전형적 실존주의 문학 작품들의 예로는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 『자유의 길』 및 희곡「닫힌 문」, 「파리떼」와 카뮈의 소설『이방인』, 『페스트』, 희곡「칼리큘라」 등을 들 수 있다.
▣ 실존주의 철학은 사르트르의 방대한 철학적 논술 『존재와 무』및 카뮈의 짤막한 철학적 에세이『시지포스의 신화』의 출판과 함께 실질적으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철학적 저술과 병행해서 그들의 철학적 사상을 표상하기 위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학적 작품을 창작해냄으로써 비롯된다.
♠ 실존주의 철학
▣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적 관심사는 ‘인간으로서의 존재’이다. 그러한 존재를 실존주의는 ‘실존l' existence’이라 호칭하며 인간 외의 모든 존재l' etre와 존재론적으로 구별한다. 인간의 특수한 존재 양식을 가장 기초적이며 본질적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실존주의는 하나의 철학적 인간학이다.
▣ 실존주의 철학이 가장 체계적이고 심도 있고 명백하게 표현된 것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에서이다. 결국 실존주의는 사르트르의 이 저서에 담긴 사상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 사르트르에 의하면 모든 철학적 문제는 방법론적으로 개개인의 구체적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 인간에게 인식/의식되지 않은 어떤 존재를 주장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사르트르는 그의 철학적 방법을 현상학적이라 호칭했으며,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그의 가장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의 첫 명제도 바로 위와 같은 맥락에서 그 뜻이 이해된다. 여기서 ‘실존’은 인간의 존재 양식을 지칭하며 ‘본질’은 우리에 의해 인식된 대상의 특성을 지칭한다.
▣ 실존/인간이 본질/대상을 선행한다면 그러한 대상은 인간의 존재 양식에 의해 크게 결정될 것이다. 이 점에서 사르트르는 또한 극히 칸트적이다.
▣ 실존과 본질의 관계 즉 인간과 그 인식 대상으로서 객관적 세계의 관계를 위와 같다고 인정할 때 인식 주체로서 의식과 그 대상은 결코 하나로 통일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세계는 의식으로서 존재와 그의 대상인 모든 존재로 양분될 수 있는 두 가지 별도의 존재로 구성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명확한 이원론적 존재론에 기초한다. 존재론적 분류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인간과 그 외의 모든 것들로 양분된다.
▣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존재는 언제나 구체적이며 구체적 존재는 일정한 공간을 떠나서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의식만은 그러한 공간적 범주로는 파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사실은 우리의 의식이다.
▣ 인간의 유일한 특징이 의식적인 존재라는 데 있고 의식의 본질이 ‘무’라고 서술될 수 있는 존재 양식을 가졌다면 인간의 본질은 ‘무’로서 존재 구조의 특수성을 의미할 것이고 인간 외의 모든 것들은 ‘존재’로서 존재 구조의 특징을 지칭하게 될 것이다.
▣ 사르트르는 이 두 가지 존재 즉 의식과 그 외의 모든 것의 양식의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것들을 각기 대자l'etre-poursoe와 즉자l'etre-en-soi라고 부른다.
①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인간 외의 모든 존재들은 그것 자체로 충만되어 있다.-이와 대조해서 존재하지 않은 존재 즉 ‘무’로서의 대자는 언제나 무엇인가로 채워질 필요가 요청되는 존재 즉 ‘결핍’으로서만 존재한다.
② 인간 외의 모든 존재 즉 즉자가 물리적 인과법칙에 의해 서로 기계적으로 얽혀 있어 그것들의 현상은 인과법칙에 의해 서로 기계적으로 얽혀 있어 그것들의 현상은 인과법칙에 비추어 설명될 수 있는 것과 대조해서, 인간 즉 대자는 그러한 결정론적 인과 법칙에서 해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 대자는 결코 즉자로 전환될 때 대자 원래의 목적은 무산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전환은 의식의 완전한 상실을 의미하게 되며 그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경험도 있을 수 없게 되는데, 이러한 조건에서는 ‘불안을 모르는 만족’을 경험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 “인간은 소용없는 고통이다”라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이나 카뮈가 즐겨 썼던 ‘부조리l'absurde’라는 개념은 인간 실존의 보편적 상황 즉 ‘의미 없음’의 상태를 지적해서 사용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 삶의 가장 바람직한 의미는 어떻게 부여될 수 있는가? 사르트르는 ‘자기 정직성authenticité’ 속에서만 무의미와 절망이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카뮈는 ‘부조리에 대한 반항revolte’을 통해서만 삶의 부조리가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철 학 | 문 학 |
논증적 | 서술적 |
발견한 진리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여 증명하고자 함 | 경험한 진리를 서술하여 표상코자 함 |
진리는 언어에 의해서 투명하게 개념적으로 기술되고 논증될 수 있음을 전제 | 진리는 완전히 개념화되거나 논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직관적으로만 경험될 수 있다 |
철학적 언어는 추상적이며 논증적 | 문학적 언어는 구체적 서술적 |
철학적 사고가 투명한 개념과 논리에 호소 | 문학적 경험은 감각과 정서적 서술에 의존 |
▣ 실존주의 철학은 문학과 밀접하게 만나고 자연스럽게 문학적 표현을 찾게 된다. 실존주의 문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문학의 근본적 기능을 철학적 사상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가장 절실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 실존주의 작품 분석
▣ 실존주의 문학은 1938년 출판된 사르트르의 일기체 소설 『구토』와 더불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 카뮈는 ‘실존주의적’이라고 밖에 규정할 수 없는 철학적 관심과 입장을 밝힌 철학적 에세이 『시시포스의 신화』와 아울러 일인칭 소설『이방인』을 1942년 동시에 출판했다.
▣ 위의 두 실존주의자의 경우 문학 작품은 철학의 문학적 표현으로 볼 수 있고 철학은 문학적 경험의 철학적 표상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실존주의 문학은 실존 철학에 비추어서만 그것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Ⅰ. 사르트르의 『구토』와 「닫힌 문」
▣ 『구토』에서의 드 트로de trop라는 말은 잉여적인 것, 즉 없어도 좋은 것, 따라서 형이상학적으로 정당화되지 않은 존재성, 결국 내재적 가치/의미가 없는 상황을 뜻한다.
▣ 소설의 제목『구토』는 형이상학적 허무주의를 극복하지 못할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부정적 태도의 물리적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구토’는 가장 추상적 철학 관념의 가장 생리학적, 즉 구상적 표상이다.
▣ 인간 자신이 존재의 의미 부재에 직면하면서 그 앞에서 생리적을 권태를 느낀다면 그것은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 즉 그 본질이 ‘결핍’/‘무’로 정의될 수밖에 없는 존재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존’이란 바로 이러한 인간 존재 양식을 지칭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 「닫힌 문」에서 시선은 의식을 상징/의미하고 의식은 자율적 주체성을 상징한다.
▣ 『구토』가 인간 존재의 우연성/무의미성에 대한 철학적 사상을, 「닫힌 문」이 ‘시성’의 의미와 철학적 의미와 인간관계에 대한 사르트르의 철학을 해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Ⅱ. 카뮈의 『이방인』과 「칼리큘라」
▣ 『이방인』은 카뮈가 실존주의에서 강조하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성’이라는 철학적 명제를 문학의 형식을 빌려 상징적으로 표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방인은 기존의 세계관/인생관에 대한 비판 및 부정적 시각을 상징한다. 따라서 그것은 그만큼 신선하다. 그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던 세계를 보다 정직히 개관적으로 새롭게 볼 수 있게 된다.
▣ 카뮈 철학에서 ‘부조리’는 모든 것의 궁극적 이해와 의미의 부재를 지칭한다.
▣ 『이방인』은 부조리의 철학적 사상을 이중적으로 보여준다.
① 주인공 뫼르소의 눈에는 세계와 인생의 궁극적 존재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② 『이방인』은 뫼르소가 얼마만큼 부조리한 즉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살인을 하게 되고, 살인죄로 몰려 사형을 받게 되는가를 서술함으로써 작가 카뮈는 객관적 세계만이 아니라 우리들이 하는 행위도 이성으로 파악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 「칼리큘라」가 세계의 형이상학적 부조리, 즉 의미의 부재에 저항하고 그것에 도전하고 나섰음을 의미한다.
▣ 소설『이방인』이 세계의 형이상학적 부조리를 가시화 해주고, 희곡「칼리큘라」가 부정적 차원에서 그러한 부조리에 대한 철학적 저항과 도전의 의미를 구상했다면, 소설『페스트』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어떠한 긍정적 삶의 자세가 가능한가를 철학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카뮈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세계와 인생에 궁극적 의미가 없다고 해도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의미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실존주의적 신념이다.
♠ 실존주의 문학의 평가
▣ 실존주의 문학 운동은 문학에 철학성을 크게 강조함으로써 문학이 갖고 있는 예술성/밀도와 긴장감과 깊이를 실존주의 문학 이전의 문학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색다르게 가져왔다.
▣ 첫 번째 신념 - 실존주의 문학을 창조한 사르트르는 문학의 궁극적 가치를 그것의 정치/사회성에 두고 있다. 문학은 일종의 사회 참여 양식이다.
▣ 두 번째 신념 - 한 시대의 사상과 감수성의 소산이기는 하지만 시대적 경계를 넘어 보편적 의미를 갖고 문학사에서 사라지지 않게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까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유죄인가 혹은 무죄인가 어느 한쪽에 서서 논술하시오.
♠ 까뮈의 [이방인]과 최인훈의 [광장]에서 주인공이 겪는 현실과 이상의 문제가 무엇인지 지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 [이방인]의 뫼르소와 [광장]의 이명준이 바라보는 여성에 대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술하시오.
▣ 까뮈의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는 철저하게 전통적인 감정과 가치관에 대해서는 이방인이며 무관심한 현대인의 전형과 같은 인간이다. 부조리에. 눈뜨는 순간, 삶의 허망에 빠지는 순간, 그것은 우리 속의 이방인이 눈뜨는 순간이며, 가짜 삶이 아닌 진짜 삶의 환희란 결국 멍청한 자기 마취적인 가짜 환락이 아니며 삶과 죽음의 덧없는 부조리를 명철하게 인식하는 의식의 환희를 말하는 것이므로, 그대 속에 뫼르소가 살고 있고 또한 우리들 사이에도 뫼르소가 살아 있다.
▣ 최인훈의 [광장] 줄거리
스스로 관념 철학자의 달걀로 자처하는 이명준은 철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다. 철학의 탑 속에 자신을 가둔 채 사람을 풍경처럼 바라보는 그는 어떻게 하면 힘껏 살 수 있는지 알지 못해 고민한다. 그가 보기에 해방 후 남한의 현실은 밀실만 푸짐하고 장장은 죽은 곳으로 인식된다. 남한의 정치․문화 현실에 대한 그의 비판은 대단히 날카로운 것이지만, 그 텅 빈 광장으로 시민을 모을 나팔수가 되라는 정 선생의 권유에 회의를 표하는 그는 실천론자라기보다 관념론자에 가깝다.
영미의 집에서 만났던 윤애와 사귀던 중, 그는 뜻하지 않게 독립 투사였던 아버지가 북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제 사찰계 형사 출신의 형사에게 시달린다.
남한의 모든 것에 환명을 느끼고 윤애와의 사랑에도 불안을 느끼던 명준은 뚜렷한 확신도 없이 북으로 밀항한다. 그러나 그 곳에서 발견한 것은 인민들의 광장이 아니라, 인민과 혁명을 팔아 권력을 잡아 인민의 위에 군림하는 당(黨)의 권위와 밀실이었다. 노동신문 편집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명준은 아버지가 살림을 차린 것을 보고 혁명을 팔아 이상과 현실을 바꾸어 살아가는 죄를 짓고 있다며 격렬히 비난한 뒤 집을 뛰쳐나온다..
그는 신문사도 사직하고 노동판에 뛰어들었다가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 그곳에서 국립극단 발레리나인 은혜를 만난다. 결국 남북 어디에서도 인간끼리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광장을 발견하지 못한 이명준은 여자를 통해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은혜는 명준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소련으로 가고, 곧이어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정치보위부원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낙동강 전투에서 명준은 간호병으로 자원해 전선에 내려온 은혜와 재회하지만, 그녀는 명준의 아이를 가진 채 유엔군의 대대적인 공습에 의해 전사하고 명준마저 포로로 잡힌다.
포로수용소에서 남과 북, 그리고 중립국 중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자 명준은 자신이 남과 북 어디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중립국을 선택한다. 그가 중립국을 선택하게 된 가장 절실한 이유는 은혜의 죽음으로 자신의 마지막 돛대가 부러졌다는 절망적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남쪽의 윤애와 북쪽의 은혜를 통해 사랑이야말로 이데올로기조차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나, 은혜의 죽음으로 모든 게 허망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명준은 중립국 행 타고르 호에 승선하면서부터 자신을 감시하는 듯한 시선이 있음을 의식하고 불안해하는데, 그것은 중립국으로 도피하려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괴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 또 선원들에게는 뱃사람을 잊지 못하는 여자의 마음의 상징적 지표라 알려져 있는 갈매기가 항구에서부터 줄곧 따라오는데, 명준은 큰 새와 꼬마 새가 은혜와 그녀의 뱃속에 있던 딸이라 생각하며 푸른 바다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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