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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순 전

도추 정박사 2023. 6. 1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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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순 전

 

󰏐 핵심 사항

 

󰏐 작품의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최초의 가전으로 술을 의인화하였고, 이규보의 가전 '국선생전'에 영향을 주었다.

작자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생과 술의 관계를 문제 삼고 있다. 즉 인간이 술을 좋아하게 된 것과 때로는 술 때문에 타락하고 망신하는 형편을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인간과 술의 관계를 통해서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조명해 본 것이다. 당시의 국정의 문란과 병폐, 특히 벼슬아치들의 발호와 타락상을 증언하고 고발하려는 의도의 산물이다. 이 작품은 모리배들의 득세와 뛰어난 인물들이 오히려 소외당하는 현실을 풍자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순전은 교훈성이 강하고 계세징인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술의 내력과 성쇠(盛衰)를 통하여 술에 빠져 향락만을 일삼는 문신들과 방탕한 무리들을 풍자하고 요사스러운 간신배들을 엄준하게 꾸짖고 있다.

이와 같은 가전체는 '전기'의 형식과 허구적 성격으로 후대 소설의 모태가 되었다.

 

술을 의인화(擬人化) 하여 술에 탐닉하다가 패망함을 풍자한 가전체 문학의 효시이다. 고려 고종 때 임춘이 지은 작품으로서, 가전체 작품이 모두 그렇듯이 이 작품도 교훈성이 강하고 세상을 경계하고 사람을 징계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술의 내력과 성쇠를 통하여 술에 빠져 향락만을 일삼는 문신들과 방탕한 무리들을 풍자하고 요사스러운 간신배들을 엄준하게 꾸짖고 있다. 이와 같은 가전체는 전기(傳記)’의 형식과 허구적 성격으로 후대 소설 형성의 모태가 되었다.

 

술의 내력과 그것의 흥망성쇠를 통하여, 술에 빠져 향락만을 일삼던 문약과 방탕하는 무리를 풍자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아부하여 임금의 총애를 받고 나라를 그르치어 정의의 자탄을 받는 무리를 꾸짖는, 다분히 풍자적이고 목적성이 강한 작품이다.

 

 

고려 무신 집정 때 문인 임춘이 술을 의인화하여 지은 가전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생과 술의 관계를 문제삼고 있다. 즉 인간이 술을 좋아하게 된 것과 때로는 술 때문에 타락하고 망신하는 형편을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인간과 술의 관계를 통해서 임금과 술의 관계를 조명하여 본 것이다. 당시의 국정의 문란과 병폐, 특히 벼슬아치들의 발호와 타락상을 증언하고 고발하려는 의도의 산물이다. 이 작품은 모리배들의 득세와, 뛰어난 인물들이 오히려 소외당하는 현실을 풍자,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일하게 술을 의인화한 이규보의 국선생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가전(假傳)은 세상을 비판하고 풍자하면서 계세징인(戒世懲人)하고자, 사물을 의인화하여 실전(實傳)과 같은 기술 방법으로 써 나가는 국문학의 한 갈래이다. ‘국순전은 술을 의인화하여 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말한 작품인데, ‘국순전에 나타난 술의 교훈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술은 흥을 돋우어 주는 것이지만, 너무 마시면 나라마저도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 ‘국순전’과 ‘국선생전’과의 관계

 

영향 관계 : 제목에서부터 시작하여 관련 인물과 지명, 서술 방식 등에 있어 많은 유사성이 발견된다. 따라서, 이규보의 국선생전은 이보다 앞서 나온 임춘의 국순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주제상의 차이점 : ‘국순전이 요사하고 아부하는 정객들을 꾸짖고 방탕한 군주를 풍자하는 것 을 목적으로 했다면, ‘국선생전은 미천한 몸으로 성실히 행동했기 때문에 등용되었고, 총애가 지나쳐서 잘못을 저질렀지만 물러난 후 반성하고 근신할 줄 아는 인간 상을 그렸다. , 국난을 당해서 백의 종군까지 하는 위국 충절의 대표적 인간상을 등장시켜 사회적 교훈을 강조하였다.

영향 : 송나라 때의 <태평광기(太平廣記)>서막(徐邈)’ 설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청화선생전(淸和先生傳)’에서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 연구 문제

 

1.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를 생각해 보자.

사기의 전기 형식을 빌렸으며, 신라 설총이 지은 화왕계는 가전의 기원으로 그 맥락이 닿아 있다. 설화와 소설을 잇는 교량적 역할을 하고 있는 작품이다. 술을 인간사의 타락하기 쉬운 속성에 결부시켜 의인화하였다.

 

2. ‘()’의 성격을 살펴보자.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혹하게 하는 존재이다.

 

3. 이와 같은 작품들이 추구하는 목적을 생각해 보자.

계세징인(戒世懲人)

 

4. 이 작품은 술의 일생을 전기 형식으로 쓴 것이다. 작가가 술의 일생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술에 탐닉하여 향락만을 일삼던 당대 문사들과 임금의 총애를 받으면서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나라를 어지럽히던 간신배를 풍자하여 꾸짖은 작품이다.

 

5. 이 작품에서 국순은 자신의 출신 가계에 어떤 자취를 남긴 인물인지 설명해 보자.

국순의 90대 조상은 국가에 공을 세웠으나 청렴하게 살았으며, 5세손은 나라일을 책임감 있게 잘하였으나 벼슬에 등용되지 않아 이후로 민간에 숨어 살았다. 아버지 주에 이르러 출세하였으나, 세상이 어지러워지매 벼슬에서 물러나 죽림에서 놀았다. 이렇게 순의 조상은 아름다운 덕을 지녔으면서 분수를 지키어 존경을 받는 가문이었다. 그런데 순에 이르러 왕의 총애를 받게 되자, 아첨과 불의로써 분수에 넘치는 행위를 하고 물러날 때 물러나지를 않으면서 나라를 어지럽히어 남의 비웃음을 사게 되었다.

 

6. ‘국순전의 문학사적 의의를 알아보자

사물을 의인화하여 교훈을 주제를 표현한 화왕계의 수법을 발전시킨 가전 문학의 효시이며, 그 전기체(傳記體) 구성과 현실 비판 정신, 창의적 허구성 등은 다음 시대에 출현할 고전 소설의 발판이 되었다.

 

7. 본문 중에 나오는 다음 내용은 무엇을 풍자하기 위한 것인지 말해 보자

일찍이 임금님이 순과 더불어 술을 마실 때, 순의 입에서 냄새가 나므로 임금이 싫어하여 말하기를 경이 나이 늙고 기운이 없어 내 조정의 벼슬을 감당하지 못하는가”. 하였다.

물러날 시기를 알지 못하고 나이가 늙고 기운이 없어질 때까지 분수에 넘치게 벼슬을 붙잡고 있다가 쫓겨나게 된 국순(관료)를 풍자함.

󰏐 참고 사항

서하선생집 - 이인로가 그의 지기(知己)인 임춘이 죽자 그 유고(遺稿)를 모아 엮은 시문집이다. 1222년에 처음 간행되었으나 초간본 중 완질로 전하는 것은 없고 조선 시대에 들어와 숙종, 고종 때 중간되었다. ‘국순전’, ‘공방전은 한국 문학사상 가전 작품의 효시가 되며 술과 돈을 의인화하여 국정을 담당하는 군신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국순전(麴醇傳)

                                                                                                                                                             임춘(林椿)

국순(麴醇)의 자(字)는 자후(子厚)이다. 그 조상은 농서( 西) 사람이다. 90대조(九十代祖)인 모(牟)가 후직(后稷)을 도와 뭇 백성들을 먹여 공이 있었다. ‘시경(詩經)'에,
“내게 밀과 보리를 주다."
한 것이 그것이다. 모(牟)가 처음 숨어살며 벼슬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밭을 갈아야 먹으리라."
하여, 밭에서 살았다. 임금이 그 자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서(詔書)를 내려 안거(安車)로 부를 때, 군(郡)과 현(縣)에 명하여 곳마다 후하게 예물을 보내게 하였다. 신하를 시켜 친히 그 집에 나아가, 드디어 방아와 절구[杵臼] 사이에서 교분을 정하였다. 화광 동진(和光同塵)하게 되니, 훈훈하게 찌는 기운이 점점 스며들어서 온자한 맛이 있어 기뻐 말하기를,
“나를 이루어 주는 자는 벗이라 하더니, 과연 그 말이 옳다."
하였다. 드디어 맑은 덕(德)으로써 들리니, 임금이 그 집에 정문(旌門)을 표하였다. 임금을 따라 원구(園丘)에 제사한 공으로 중산후(中山侯)에 봉해졌다. 식읍(食邑)은 일만 호(一萬戶)이고, 식실봉(食實封)은 오천 호(五千戶)이며, 성(姓)은 국씨(麴氏)라 하였다. 5세손이 성왕(成王)을 도와 사직을 제 책임으로 삼아 태평성대를 이루었고, 강왕(康王)이 위(位)에 오르자 점차로 박대를 받아 금고(禁錮)에 처해졌다. 그리하여 후세에 나타난 자가 없고, 모두 민간에 숨어 살게 되었다. 위(魏)나라 초기에 이르러 순(醇)의 아비 주(酎)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서, 상서랑(尙書郞) 서막(徐邈)과 더불어 서로 친하여 그를 조정에 끌어들여 말할 때마다 주(酎)가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침 어떤 사람이 임금께 아뢰기를,
“서막이 주와 함께 사사로이 사귀어, 점점 난리의 계단을 양성합니다."
하므로, 임금께서 노하여 막을 불러 힐문하였다. 막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기를,
“신이 주를 좇는 것은 그가 성인(聖人)의 덕이 있삽기에 수시로 그 덕을 마셨습니다."
하니, 임금께서 그를 책망하였다. 그 후에 진(晋)이 이어 일어서매, 세상이 어지러울 줄을 알고 다시 벼슬할 뜻이 없어, 유령(劉伶), 완적(阮籍)의 무리들과 함께 죽림(竹林)에서 노닐며 그 일생을 마쳤다.
순(醇)의 기국(器局)과 도량은 크고 깊었다. 출렁대고 넘실거림이 만경창파(萬頃蒼波)와 같아 맑게 하여도 맑지 않고, 뒤흔들어도 흐리지 않으며, 자못 기운을 사람에게 더해 주었다. 일찍이 섭법사(葉法師)에게 나아가 온종일 담론 할 때, 일좌(一座)가 모두 절도(絶倒)하였다. 드디어 유명하게 되었으며, 호(號)를 국처사(麴處士)라 하였다. 공경(公卿), 대부(大夫), 신선(神仙), 방사(方士) 들로부터 머슴, 목동, 오랑캐, 외국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향기로운 이름을 맛보는 자는 모두가 그를 흠모하여, 성대(盛大)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순(醇)이 오지 아니하면 모두 다 추연하여 말하기를,
“국처사가 없으면 즐겁지가 않다."
하였다. 그가 당시 세상에 애중(愛重)됨이 이와 같았다.
태위(太尉) 산도(山濤)가 감식(鑒識)이 있었는데, 일찍이 그를 말하기를,
“어떤 늙은 할미가 요런 갸륵한 아이를 낳았는고. 그러나 천하의 창생(蒼生)을 그르칠 자는 이 놈일 것이다."
라 하였다. 공부(公府)에서 불러 청주 종사(靑州從事)를 삼았으나, 격( )의 위가 마땅한 벼슬자리가 아니므로, 고쳐 평원 독우(平原督郵)를 시켰다. 얼마 뒤에 탄식하기를,
“내가 쌀 닷 말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鄕里) 소아(小兒)에게 향하지 않으리니, 마땅히 술 단지와 도마 사이에서 서서 담론할 뿐이로다."
라고 하였다. 그 때 관상을 잘 보는 자가 있었는데 그에게 말하기를,
“그대 얼굴에 자줏빛이 떠 있으니, 뒤에 반드시 귀하여 천종록(千鍾祿)을 누릴 것이다. 마땅히 좋은 대가를 기다려 팔라."
라고 하였다. 진후주(陣候主) 때에 양가(良家)의 아들로서 주객 원외랑(主客員外郞)을 받았는데, 위에서 그 기국을 보고 남달리 여겨 장차 크게 쓸 뜻이 있어, 금구로 덮어 빼고 당장에 벼슬을 올려 광록 대부 예빈경(光祿大夫禮賓卿)으로 삼고, 작(爵)을 올려 공(公)으로 하였다. 대개 군신(君臣)의 회의에는 반드시 순(醇)을 시켜 짐작(斟酌)하게 하나, 그 진퇴(進退)와 수작이 조용히 뜻에 맞는지라, 위에서 깊이 받아들이고 이르기를,
“경(卿)이야말로 이른바 곧음[直] 그것이고, 오직 맑구나. 내 마음을 열어 주고 내 마음을 질펀하게 하는 자로다."
라 하였다. 순(醇)이 권세를 얻고 일을 맡게 되자, 어진 이와 사귀고 손님을 접함이며, 늙은이를 봉양하여 술․고기를 줌이며, 귀신에게 고사하고 종묘(宗廟)에 제사함을 모두 순(醇)이 주장하였다. 위에서 일찍 밤에 잔치할 때도 오직 그와 궁인(宮人)만이 모실 수 있었고, 아무리 근신(近臣)이라도 참예하지 못하였다. 이로부터 위에서 곤드레만드레 취하여 정사를 폐하고, 순은 이에 제 입을 재갈 물려 말을 하지 못하므로 예법(禮法)의 선비들은 그를 미워함이 원수 같았으나, 위에서 매양 그를 보호하였다. 순은 또 돈을 거둬들여 재산 모으기를 좋아하니, 시론(時論)이 그를 더럽다 하였다.
위에서 묻기를,
“경(卿)은 무슨 버릇이 있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옛날에 두예(杜預)는 좌전(左傳)의 벽(癖)이 있었고, 왕제(王濟)는 말[馬]의 벽이 있었고, 신(臣)은 돈 벽이 있나이다."
하니, 위에서 크게 웃고 권고(眷顧)가 더욱 깊었다. 일찍이 임금님 앞에 주대(奏對)할 때, 순이 본래 입에 냄새가 있으므로 위에서 싫어하여 말하기를,
“경이 나이 늙어 기운이 말라 나의 씀을 감당치 못하는가."
라 하였다. 순이 드디어 관(冠)을 벗고 사죄하기를,
“신이 작(爵)을 받고 사양하지 않으면 마침내 망신(亡身)할 염려가 있사오니, 제발 신(臣)을 사제(私第)에 돌려주시면, 신(臣)은 족히 그 분수를 알겠나이다."
라고 하였다. 위에서 좌우(左右)에게 명하여 부축하여 나왔더니, 집에 돌아와 갑자기 병들어 하루 저녁에 죽었다. 아들은 없고, 족제(族弟) 청(淸)이, 뒤에 당(唐)나라에 벼슬하여 벼슬이 내공봉(內供奉)에 이르렀고, 자손이 다시 중국에 번성하였다. 사신(史臣)이 말하기를,
“국씨(麴氏)의 조상이 백성에게 공(功)이 있었고, 청백(淸白)을 자손에게 끼쳐 창(鬯)이 주(周)나라에 있는 것과 같아 향기로운 덕(德)이 하느님에까지 이르렀으니, 가히 제 할아버지[祖]의 풍이 있다 하겠다. 순(醇)이 들병의 지혜로 독 들창[甕爽]에서 일어나서, 일찍 금구(金 )의 뽑힘을 만나 술단지와 도마에 서서 담론하면서도 가(可)를 들이고 부(否)를 마다하지 아니하고, 왕실(王室)이 미란(迷亂)하여 엎어져도 붙들지 못하여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거원(巨源)의 말이 족히 믿을 것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 어휘 풀이

* 국순(麴醇): 술을 의인화된 말. 술의 재료인 누룩[]을 성으로, []을 이름으로 삼음

* 농서(隴西): ·한시대 군 이름

* 후직(后稷): 중국 주나라의 시조. 농사일을 잘 다스려 순임금이 후직이란 이름을 줌

* 기국(器局): 사람의 도량과 재간

* 섭법사(葉法師): <태평광기>섭법선(葉法善) 설화에 나오는 인물

* 일좌(一座): 온 좌석

* 절도(絶倒): 까무러쳐 넘어짐

* 방사(方士): 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

* 종묘(宗廟):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

* 참예(參詣): 나아가서 빎

* (): 옛날 강신제(降神祭) 때 썼다는 옻기장을 재료로 하여 빚은 술. 창주(鬯酒)

* 들병[설병(挈甁)]: 술동이

* 들창[옹유(甕牖)]: 항아리 뚜껑

* 금구(金毆): 금 또는 쇠로 만든 사발이나 단지

* 미란(迷亂): 정신이 흐리멍덩하여 어지러움

* 거원(巨源): 중국 진나라의 높은 선비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산도(山濤)의 자(). 공정한 성품에 덧붙여 인물을 보는 감식안이 있어 그가 골라 뽑은 인물은 모두 한 시대에서 빼어난 선비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