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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 표현이 지니는 특징에 대한 논의

도추 정박사 2023. 6. 19. 05:31

 

♠ 정지용
<향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워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표현

1. 토속적이고 원초적인 심상(실개천, 얼룩백이 황소, 질화로, 짚베개 등)에 의해 고향의 정경을 재구성함으로써 그리움의 주제를 부각한다.

2. 공감각(共感覺) 및 감각의 전이(轉移) 기법을 통해 참신하고 선명한 시각적 표현을 보인다.

3. 아름다운 우리말의 해조(諧調)(화합과 조화)가 서정적인 분위기와 조화되어 고도의 압축된 시적 형상화를 이룬다.

<유리창>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 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고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감정 절제의 표현 기법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란 대단히 슬픈 법인데 이 시에서는 그 감정이 엄격히 절제되어 있다. 이처럼 슬픈 감정을 그대로 노출하지 않고 절제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표현법이 사용되고 있다.

1. 감정의 대위법 : 이 시에서 감정을 표현한 구절은 차고 슬픈 것외로운 황홀한 심사두 군데뿐인데, 슬픔과 외로운 감정이 차가운 감각과 황홀한 심사와 어우러져서 표현되고 있다. 이처럼 대비되는 감각이나 심사(정신 상태)를 슬픈 감정과 대위(對位)시킴으로써 감정을 절제한 것이 감정의 대위법이다.

2. 선명하고 감각적인 이미지의 사용 : 이 시의 주제는 죽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지만, 이 시에서 죽은 아이를 직접 표현한 시어는 하나도 없다. 모두 언 날개’, ‘물 먹은 별’, ‘산새와 같은 감각적인 사물로써 죽은 아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어떤 감정을 전달받기보다는 선명한 영상, 곧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심지어, 작품 내에서 그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물도 유리창이라고 하는 선명한 이미지이고, 아이가 죽은 이유도 폐혈관이 찢어졌다고 하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유리창의 이미지

정지용 시에서 가장 중요한 시어는 이다. 그에게 창은 안과 밖을 단절시키면서 동시에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창 안에는 서정적 자아가 위치하고 있고, 창 밖은 주로 풍경으로 나타난다. 곧 서정적 자아는 창 안에 있으면서 창 밖의 현실을 바라보고 관찰하며 느끼는데 그 자아가 창 밖, 곧 현실 세계로 직접 나서지는 않는 것이다.

이 시에서도 유리창은 죽은 자식과 서정적 자아 사이를 가로막는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왜 유리창을 열지 않는가, 창을 열면 잃어버린 아이의 비유적 형상인 새의 영상마저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리창은 서정적 자아를 그리워하는 대상(죽은 아이)과 격리시키면서 동시에 영상을 대면하게 해 준다.

요컨대 유리창은 곧 창 안의 서정적 자아와 창 밖의 현실의 세계를 이어 주는 통로이자 차단기인 셈이다.

純粹技法 ----- 鄭芝溶論

 

1. 현대적 감성의 출범 ----- 芝溶詩의 출발과 흐름

그의 의 출발은 1926년부터로 기산 된다. ≪學潮, 新民, 文藝時代를 통해서 후에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된 <카페프란스>, <따리아>, <紅椿> 등을 발표함으로써 일약 한국시단의 기린아가 되는 것이다.

鄭芝溶詩世界

1단계 1920년대 중반기 1930년대 전반기(휘문고보를 졸업하고 同志社大學에 적을 둔 때)
대부분의 작품이 鄭芝溶詩集에 수록되었다.
2단계 1933
6카톨릭靑年창간. 芝溶은 여기에 金起林李箱張端彦 등의 를 수록한다.
8九人會 발족을 통해 순수문학의 결의를 다지고 林和 등의 계급문학, 대사회적 효용가치를 지닌 문학활동 옹호론을 풍자비판냉소의 대상으로 삼는다.
3단계 1930년대 후반
그의 이전 작품들은 脫東洋서구지향의 성향이 강한 쪽에 속했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는 동양적인 감각을 곁들이게 되었고 전통을 향한 정신경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2. 감각과 기법 ----- 事物詩의 성향

초기에 그는 매우 다양한 양식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시조, 동요 등)

모더니즘계 에 있어서 는 감정의 방출과 그 부수현상으로 지목될 관습성이 강한 운율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鄭芝溶은 그 나름의 언어사용기법으로 그런 과제를 기능적으로 대처한 시인이다. 그 단적인 표상이 되고 있는 것이 감각에 역점을 둔 언어사용이다.

鄭芝溶은 한때 에 정치와 참여가 있는 사례가 있었다. <카페프란스> - 그러나 이 작품 역시 정치상황의 인식을 토대로 나온 작품으로 볼 수 없다.

1단계의 鄭芝溶 詩 = 物理詩의 단면을 드러내는 순수시

 

3.가톨리시즘 ----- 2국면의 芝溶詩

본래 그의 선친 鄭泰國은 충청도 옥천에 자리를 잡고 산 土族의 후예였다. 그는 한때 中國만주에 다녀왔는데, 그 후 한의사가 되었고 또한 가톨릭에 귀의했다 한다. 그의 영향으로 鄭芝溶은 한때 상당히 착실한 천주교 신자가 되어 그의 차남 求翼3求寅에게 신부 수업을 시켜 함경도 소재의 德源神學校에 맡기기까지 했다.

鄭芝溶의 카톨리시즘은 결국 제1단계에서 그의 가 지닌 物理詩의 성격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랜섬이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物理詩, 곧 사실주의의 차원은 우리에게 따분하게 느껴진다. 그 지양, 극복을 위해서 알맹이 있는 사상 내용을 가지고자 한 것이 鄭芝溶信仰詩로 나타난 셈이다.

鄭芝溶류의 언어기법으로 볼 때 제2국면에서 그는 信仰詩가 가지는 직설적인 언어들로 인해 결국 란 거창한 사상철할관념의 그늘에서 행해지는 언어의 재주놀음이 아니라는 인식에 이르러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4. 명증한 밀씨와 東洋的 節制 ----- 3단계

◆ ≪文章의 선고위원이 되면서 鄭芝溶의 제3단계 는 본격화된다. 2단계에 이르기까지 鄭芝溶속에는 다분히 외래지향서구추수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다. 그것이 이 무렵에 이르자 180도 그 성향을 달리하고 나타난다.

鄭芝溶의 전통취향, 동양적인 것에 대한 정신적 경사는 그의 실제작품에서 세 가지 특징적 단면을 형성시킨다..

내면세계에 도사린 전통 내지 동양은 反俗流反庶民의 단면을 띠고 있다.

맑고 깨끗하기 그지없는 정신세계와 그 문체기법에 나타나는 맵짠 솜씨다.

말솜씨기법이 더욱 예리해진 점이다. 특히 심상 제시의 경우 두드러 진다.

鄭芝溶은 물론 제3단계에 이르기까지 이런 차원의 인식에는 이르지 못했다. 다만 그는 필요에 따라 동양을 수용한 다음 거기서 빚어진 부작용을 지양시켜야 했다. 그는 그저 동양, 詩經이나 唐詩의 높고 맑은 정신세계가 좋았을 뿐이다. 그 말씨가락형태가 빚어낸 우리 주변의 보수적 흐름을 막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데에 생각이 미치자 鄭芝溶은 기능적으로 그에 대처하는 방도를 강구하고 나섰다. 그 단적인 표상으로 나타난 것이 유난히 신경을 곤두세운 그의 언어구사 기법이다. 특히 예각적인 심상의 제시는 그가 최대한 역점을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경우다. 그것만이 제3단계의 그의 에 자칫 끼어들지 모르는 정체성, 진부한 느낌을 극복하고 그가 지향하는 바 참신한 를 만들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 역사의 격랑과 순수시의 운명 ----- 맺는 말

鄭芝溶轉身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그의 오산이다. 하나는 鄭芝溶이 정치에 개입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文學家同盟의 성격 파악에서 보여준 미숙성이다.

815 이후 鄭芝溶轉身은 납북과 같은 그의 비극을 빚어내는 직접적 빌미가 된 셈이다. 순수시인은 순수시의 입장을 지켜야 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6․25때 鄭芝溶이 행방불명된 것과 같은 비극은 방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鄭芝溶이 그의 를 위해 벌인 시행착오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백 석
<여우난 곬족()>


명절날 나는 엄매 아베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거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後妻)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 옷이 정하든, 말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인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니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오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쌍방이 굴리고 바리깨 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른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 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백석의 시에 나타난 고향의 이미지

백석의 시에서 고향의 모습은 그 자신의 유년 시절 체험을 통해서 풍부하고 다양하게 그려진다. 그는 어린 소년을 시적 자아로 내세우고, 시적 자아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고향과 고향 사람들과 풍습(민속)을 다양하게 그려 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재현된 백석의 고향여우난 곬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친족 간의 우애와 정이 넘치는 공동체적인 제의(祭儀)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土俗的과 모더니티 ----- 白石論

 

1. 사슴의 시인

우리 근대시사를 보면 거기에는 뜻밖에도 풍문과 雜報에 내맡겨진 부분이 적지 않다. 白石도 그에 해당되는 이름 가운데 하나다. 그의 시집 사슴1936년 자비 출판으로 100부가 출간되었다.

吳章煥의 터무니없는 비평에도 불구하고 白石의 시집 사슴朴龍喆金起林 등에 의해서 적지 않게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2. 土俗의 특이한 세계, 해사성

白石이 등장하기 이전 한국 시단은 대개 세 개 유파가 존재했다.

金起林이 주도한 주지주의계 모더니즘

카프의 발전적 전개 형태에 해당되는 현실주의의 흐름

비주지주의 시인들에 의해 쓰인- 李箱, 徐廷柱, 吳章煥

이런 30년대 중반기 경의 시단 현황으로 보면 白石의 시집 사슴은 매우 특징적인 것, 이색적인 것이었다. 거기에는 李箱이나 徐廷柱를 지배하는 인생, 또는 세계에 맞서 그것을 초극하려는 의지가 뚜렷이 검출되지 않는다. 또한 카프 출신의 시인들이 지닌 현실과 역사의 수용 노력도 강한 줄기를 이루지는 않았다. 특히 주목되는 것이 白石과 모더니즘의 관계다.

白石의 작품과 이미지즘-모더니즘의 흐름을 이은 金起林 등 한국 모더니즘과는 너무 다르다. 白石의 많은 작품은 정확하고 명쾌한 말을 썼다기보다는 그와 무관한 입장에서 그의 감정을 객체로 제시한 것이다. 또한 그 형태 역시 집중적이기보다는 확산적인 것이다.

 

 

3. 몇 가지 관점과 그 문제점

초현실주의가 自我超自我의 범주 이전에 Id의 영역을 들추어내고자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연자간>이나 <古夜>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바 白石에는 그런 단면이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

이와 함께 또 하나 지적되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이 白石가 지닌 反都市 山村 性向이다.

白石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거기에 짙게 깔린 향토성과 지방색, 方言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4. 白石 詩의 문학적 의의

그는 충분히 모더니즘의 세계도 받은 시인이다. 그와 동시에 토속의 세계, 관습과 전통의 테두리에도 어느 정도 白石은 눈길을 보냈다.

白石 詩의 근대성, 내지 현대적 단면은 그의 작품이 지닌 내재적 여건을 통해 나타난다.

白石은 역사적 사실이나 人文地理上의 일들을 전혀 제재로 택하지 않았다.

白石定州城을 소재로 그것을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싸이게 했고, 동시에 현대시의 한 원리로 생각되는 비약과 축약의 기법을 구사했다. 결국 그는 金素月과는 다른 세계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金起林이나 李箱, 徐廷柱, 吳章煥과도 다른 풍경을 펼친 시인이다.

 

♠ 서정주
<자화상(自畵像)>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흑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햇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덕거리며 나는 왔다.

작품의 감상

자화상에서 시인이 회고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이제까지 살아온 지난 23년의 생애일 것이다. 화자는 스스로를 종의 자식이었다고 함으로써 미천한 출신과 가난의 고통이 자신을 운명적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자신의 운명적 상황은 바람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종합된다. ‘스물 세햇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는 고백에서, 바람은 유동성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시어로, 자신의 성장 과정이 누군가의 돌봄이 없는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시인은 부끄럽기만 하였고, 남들이 자신에게서 천치, ‘죄인을 읽고 가는 것을 오히려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화자를 당당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바로 시이며 가 섞인 시를 쓰는 자신의 삶에 자긍심을 지니게 되며 일종의 외경감(畏敬感)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에 대한 추구 자세가 자신의 존재를 병든 수캐처럼 살아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시는 미당 서정주 초기 시에서 보여 주었던, 강렬한 생명의 솟구침을 주제로 한 생명파 시인으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直情美學의 충격파고 ----- 徐廷柱論

 

1. <花蛇>의 전경화 ----- 徐廷柱의 등장

<문둥이>徐廷柱 詩의 특징적 단면을 가장 집약적으로 간직한 것이다. 그리고 < 花蛇>는그 확인 내지 증폭퐌에 해당된다. 사실 <문둥이>는 너무 짧고 원형적이다. 그것을 보완 확충하기 위해서 <花蛇>와 같은 후속 작품이 요구된 것이다.

<花蛇>의 어조에서 짐작되는 화자의 감정은 매우 直情的이며 충동적인 낌새를 느끼게 만든다. 그는 혈기 방장한 나이와 정신 상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배암’에 기탁한 대아성 감정 역시 매우 숨 가쁘며 충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을 <花蛇>는 형태, 구조를 통해서 기능적으로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좋은 에서 형태는 반드시 새롭게 해석되고 제작자에 의해 가장 개성적으로 빚어져야 하는 독창적 차원의 것이다. 이 말의 계기 개념 역시 참이다. 즉 한 작품의 의미 내용과 의도 감정을 가장 기능적으로 살린 가 가장 훌륭한 일 수 있는 것이다. <花蛇>는 이런 관점에서 보아도 매우 좋은 작품이다.

 

2. 自我 탐구 또는 을 향한 질주

잠시 은둔 생활을 했던 徐廷柱1939년부터 의욕적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은① ≪詩人部落발간 후의 귀향과 방랑은 물론 일시적인 것이었다. 서울을 떠나 있으면서도 그는 를 생각했을 것이고 작품을 구상, 발표할 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두어 해 다음의 의욕적 작품발표는 그에 말미암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종의 對他意識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상대는 吳章煥으로 보인다.

<自畵像>으로 대표되는 徐廷柱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주 처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자아 천착 또는 추구다. 그것은 바로 徐廷柱가 스스로의 를 통해서 철저하게 파악하고자 한 결의의 표명이었다.

徐廷柱가 등장 전부터 사숙, 탐닉한 시인에 하이네와 보들레르가 있었다. 그의 詩作 경향에 악마파로 이야기될 수 있는 데카당스와 세기말의 요소가 있음은 달리 군말이 필요 없는 일이다.

◆ ≪花蛇集시대에 서정주를 지배한 것은 반합리주의적 세계 곧, 충동과 본능에 정신의 닻이 드리워진 생명 추구 의식이 된다. 단 이때 문제되어야 할 의식이 보들레르와 니체에 아울러 결부될 수 있을 것인가는 검토의 여지가 있다. 그의 세계는 아닌 다른 것을 섭취, 동화, 지배, 정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 어디까지나 를 파헤치려는 몸부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니체적이라기보다는 보들레르에 깊이 밀착한 시인이다.

 

3. 형태 구조와 역사적 좌표

그의 는 보들레르의 경우보다 좀 더 충동적이며 자동기술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徐廷柱의 시에는 아주 진한 현실성 내지 현장성에 입각한 세계에 접한다. 자칫 외래 사조의 추종일 수 있는 입장의 徐廷柱은 현장성이 짙은 쪽으로 만들었다.

 

徐廷柱의 시세계

徐廷柱는 한국시단이 일찍 갖지 못한 알몸뚱이 그대로의 를 내세웠고, 그것을 또한 의 구경에 이르는 자리에 이르도록 철저하게 파헤치려 들었다.
기법에서 그는 출발 초부터 鄭芝溶류의 말씨를 표피적인 것, 겉치레에 속하는 것으로 단정했다. 그 대신 그는 알몸뚱이인 人間의 진실을 담을 수 있는 를 시도했고, 그것을 直情言語라고 못박았던 것이다. 실제 그는 생의 진실에 직핍하는 를 씀으로써 그 이전 가 지닌 정체성을 극복했고, 그와 아울러 우리 를 들끓는 生命力으로 가득 차게 했다.
花蛇集이전에 우리 는 심하게 음악성을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 무렵 우리 는 안이한 가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시, 또는 산문화의 길을 치닫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金起林이 주도한 모더니즘에 의해 회화성 우선주의를 택하려는 경향도 있었다. 이런 생각들은 어느 모로 보든 제대로 익은 것들이 아니었다. 우선 자유시란 기성의 틀을 거부하면서 독창적인 가락을 작품 하나하나에 빚어낼 것을 기한 기도의 소산이다. 후자에 대한 사정 역시 이와 흡사했다. 즉 회화성은 의 한 단면 내지 요소였을 뿐, 그것만이 유일하게 훌륭한 의 길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진정한 를 위해서는 회화성과 함께 음악성의 길도 극대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사상 관념이나 기법, 의미구조와 음성구조 등 일견 모순 충돌하는 양 생각되는 요소들을 한 문맥과 형태 속에 엮어들이는 것으로 우리 의 새 地平이 타개될 수 있었다. 그것이 곧 튼튼한 구조의 , 그 자체가 넉넉한 動力學을 지닌 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徐廷柱는 이 분야에서도 상당히 기능적으로 활동한 시인으로 등장했다. 그는 아주 든든한 30년대 후반기 시단의 役軍으로 나타난 것이다.